문화/생활
“이제 정부는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질서를 세워나가면서 새 정부의 공공성을 국민과 세계 앞에 당당하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래서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2017년 5월 9일은 정치사에 영원히 기억될 날이다. 명예로운 시민혁명을 통해 자랑스러운 새 정부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감동적이고 자명한 이유다. 혁명적 변혁을 통해 새로운 국가권력이 나타날 때는 대체로 폭력과 피 흘림이 동반되기 쉽다. 인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우리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1960년 4·19 민주혁명도,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도, 1987년 민주시민의 저항도 피 흘림의 고통과 폭력적 충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의 대통령 선거는 촛불광장에서 분출된 성숙한 시민혁명의 결과로 이뤄낸 역사 진보의 선물이었다.
세계가 한국 시민의 명예혁명에 주목하면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특히 선진 민주 서방의 언론은 연 1700만 명이 기후의 악조건 속에서도 너무나 평화롭게 진행된 촛불 축제시위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단 한 건의 폭력도 없었다. 정말 비폭력의 잔치였고 평화의 축제였다. 그 광장에는 따뜻하고 튼실한 국민통합이 넘쳐흘렀다. 촛불처럼 스스로 태우면서 남들에게 미래의 빛을 비춰주었다. 그곳에 자기 비움의 희생과 서로 껴안음의 포용이 물결쳤다.
그래서 세계가 감탄했다. 한국에 민주주의를 수출했던 신진 서구사회의 언론이 이제는 자신들이 한국으로부터 명예로운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특히 광장의 자유분방함이 결코 질서의 미덕을 훼손하지 않았다. 한꺼번에 100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여러 시간 자유롭게 축제시위를 신나게 진행하면서도 끝마무리 청소는 어김없이 깨끗하고 정갈했다. 서방 언론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뿌듯하고 놀랐다.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섰다. 새 정부는 단순한 새 정권 또는 새 권력의 수준을 넘어 감동적인 새 시대, 새 역사, 새 체제의 모습을 국민의 피부에 와 닿게 보여줘야 한다. 단순한 정권교체 이상으로 새 역사 창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광장의 그 성숙한 환희를 국민의 삶 속에서 재현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통합의 큰 흐름이 생겨날 수 있다. 튼실하고 따뜻한 국민통합이 이뤄지게 하려면, 지난 6개월 동안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명예시민의 함성에 담긴 메시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슨 메시지였던가.
한마디로, 국가의 공공성 부재와 시장의 공정성 훼손이 몰고 온 국정농단의 비극을 절대 용인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국가의 혼은 국가공무원의 공공적 업무 수행에서 드러난다. 공무원이란 헌법 제1조가 엄숙하게 규정한 주권재민의 원칙을 모범적으로 준수하는 일꾼이다. 공공의 이익이란 주권자 국민의 소망을 실현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책임 있는 국가공무원이 사사로운 이익을 탐한다면 국가 기강이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헌법이 유린되게 마련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는 국가 최고 지도층이 국가 공공의 가치를 얼마나 처참하게 훼손했는지 최순실 추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국가 공공성의 파괴가 공정거래를 생명으로 여겨야 할 시장의 적자(適者)들의 탐욕과 결탁되면 매우 위험한 총체적 국가 위기를 낳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번에 가슴으로 알게 됐다. 바로 이런 결탁으로 국민은 억울한 고통을 겪게 된다는 진실을 세월호 비극을 통해 확인하게 됐다.
따뜻하고 튼실한 국가단합과 국민통합을 진실로 원한다면 국가의 공공성과 시장의 공정성을 총체적으로 세우는 일에 우리의 힘을 모아야 한다. 이 일에 새 정부는 팔을 걷어붙이고 앞장서야 한다. 이른바 적폐 청산 없이는 국가와 시장의 공공성, 공정성을 굳건히 세울 수 없다. 그리고 바람직한 국민대통합을 이룩할 수 없다. 1700만 명의 명예시민이 축제시위를 깨끗한 청소로 마무리했듯이, 앞으로 흐뭇한 국민통합을 통 크게 이뤄내기 위해서도 개혁적 청소를 두려움 없이 해내야 한다. 개혁적 재정비가 튼실하고 따뜻한 대통합의 문을 여는 ‘열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온 국민과 새 정부는 힘을 합쳐 국가적 대청소와 함께 국민적 대통합을 이룩해야 한다.
되돌아보면 지난 72년간의 우리 역사는 이 같은 대청소와 대통합이 함께 이뤄진 일이 없음을 증언해준다. 36년간의 일제 식민통치가 일본의 패전으로 끝장났으나 그것이 해방과 광복의 환희로 이어지지 못했고, 강대국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분단의 고통으로, 동족상잔의 아픔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비극적 역사 현실에서 국가 공공성과 시장 공정성은 분단 고착 세력에 의해 은폐되거나 왜곡됐다. 이제 정부는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질서를 세워나가면서 새 정부의 공공성을 국민과 세계 앞에 당당하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래서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나아가 지금 한반도 주변에 감돌고 있는 위험하고 불길한 반(反)평화적 흐름과 조짐을 단호하게 관리해 한반도 평화 세우기에도 힘을 모아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한 세기 훨씬 전의 조선 왕조나 대한제국이 아니다. 패권적 강대국들의 졸(卒)로 시달리기만 했던 ‘새우’가 아니다. 이제는 세계로부터 찬탄을 받고 있는 명예로운 선진 민주국이다. 대국의 탐욕적 이해 충돌을 평화적으로 균형 잡아나갈 능력을 갖춘 평화 강소국이 됐다.
새 정부는 한반도 주변이 강대국들 간의 이해 충돌 지역에서 벗어나 세계 평화와 번영의 중심부로 발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나는 새 대통령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확신을 나는 추운 겨울 광장의 촛불에서 온몸으로 느꼈다. 그 광장에서는 폭력과 증오심이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어느 날, 젊은 남자들이 차벽을 뛰어넘으려고 했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내려와, 내려와”, “비폭력, 비폭력”을 외쳤다. 그 소리를 듣고 남자들은 조용히 내려왔다. 시위는 다시 명예로운 성숙함을 되찾았다.
이렇듯 즐겁게 양보하는 마음이 광장에 가득 찼기에 그곳에는 이미 아름다운 대통합의 흐름이 조성됐다. 거기에는 계급 간의 절벽도 없었다. 이념 간 증오의 벽도 없었다. 세대 간 불신의 장벽도 없었다. 남녀 간 성차별의 깃발도 없었다. 지역 간 차별의 비웃음도 전혀 없었다. 시민 연대의 몸짓만이 튼실하고 뜨거웠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2017년부터 바라는 국민대통합이 아니겠는가. 새 대통령은 이 같은 대통합의 선두에 서주길 바란다. 우리 모두 단 한순간이라도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잊지 말기 바란다. 세계와 역사가 찬탄하는 그 성숙한 명예시민만이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한완상 /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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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