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이 얼마나 위대한 음악가인지는 1990년대 초 독일에 몇 차례 가보기 전에는 잘 몰랐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인'이라는 상투적인 찬사에만 익숙했고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친북 예술인이라는 점이 떠오를 뿐이었다.
호텔 방에서 독일 공영방송 ZDF를 틀었더니 윤 선생의 작곡 인생을 기념하는 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저녁 황금시간대에 90분간 진행됐는데,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윤이상 선생의 작품을 한 곡 연주한 후 잠시 작곡가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지휘자는 선생에게 "제가 작품 해석을 제대로 했습니까"하고 경의를 보이며 질문했다.
몇몇 독일 문화계 인사들에게 선생의 위상에 대해 물었더니 한결같이 '현존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작곡가'라고 대답했다. 선생은 우여곡절 끝에 독일로 귀화했고, 생전에 끝내 한국과 화해하지 못하고 1995년 11월 3일 베를린에서 눈을 감았다. 20주기(週忌)다. 선생의 고향 통영에서는 해마다 그를 기리는 국제음악제가 열린다.
지난 10월 1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선우지현 클라리넷 독주회'에서 선생의 음악 혼(魂)을 확인했다. 주요 레퍼토리는 윤이상의 '클라리넷과 현악 콰르텟을 위한 5중주' 1번과 2번. 선우지현은 청소년 시절에 이화경향콩쿠르 1위를 차지해 일찍이 재능을 보였고, 서울대 음대와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등에서의 치열한 담금질 과정을 거쳐 아스펜 음악제 콩쿠르 우승 등 세계무대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여성 음악인이다.

클라리넷 음률이 연주자의 몸에서 울려나오는 듯하다. 악기와 연주자가 물아일체(物我一體) 경지에 이르렀다. 1번은 1984년 작, 2번은 1994년 9월 작으로 선생의 마지막 작품. '현대음악이어서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 곡들이지만 꽤 익숙한 멜로디가 군데군데 들린다.
1번은 고즈넉한 산사(山寺)에서 풍경(風磬)과 바람소리를 듣는 분위기의 곡이었다. 클라리넷은 추녀 끝에서 흔들리는 풍경의 낭랑한 소리를 토해냈고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는 풍경을 흔드는 바람소리를 빚어냈다. 선생이 말년에 불교에 귀의했다니 한국 사찰 정경을 동경하는 그의 내면세계가 투영된 것 아니겠는가.
2번은 빠르게, 느리게, 빠르게.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었는데 작곡가가 통영의 앞바다를 그리며 선율을 구상한 것으로 짐작했다. 풍어제에서 부르는 빠른 템포의 노래, 새벽에 멸치잡이에 나서는 어부(선장)의 비장한 심경, 만선의 환희를 나타낸 경쾌한 선율….
그의 고혼(孤魂)은 선우지현의 클라리넷 음률을 타고 고향 바다로 '밀물'되지 않았을까. 작곡가와 공감하고 소통하게 하는 음악의 힘을 관객들은 온몸으로 느꼈으리라.
1994년 7월 한국의 어느 특파원이 통영산 멸치를 선물로 건네주자 선생은 그것을 반갑게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기(이것이) 진짜 토영(통영) 메르치(멸치)가?"
글 · 고승철 (소설가) 20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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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