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국가 예산을 배분하는 정책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김선혁과 정재동, 정태헌은 ‘우리나라 제1~3공화국의 예산정책 변화 과정 분석’(2007)이라는 논문에서 197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 예산정책의 시기를 변화기, 선택•유지기, 투쟁기로 구분했다. 정책 발전의 단계를 변화, 선택, 유지, 투쟁 같은 진화론적으로 접근하면서 제1공화국에서 제3공화국 시기까지의 예산정책의 변화를 분석한 것이다. 이 논문에서 제시한 시대 구분은 설득력이 높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 예산정책의 뿌리와 줄기들을 살펴보자.
예산정책의 변화기(1948~53)에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 1948년 7월 17일 제헌국회에서 제정된 헌법에 따라 우리나라의 세입과 세출에 관한 재정제도가 확립된 이후, 한국 정부와 미 군정 사이에 재정 및 재산에 관한 최초의 협정이 1948년 9월 28일부터 발효되었다. 그 후 1951년 9월 24일 우리나라 예산제도의 뿌리에 해당되는 ‘재정법’이 공포되었다. 일본의 재정법과 회계법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이었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도의 우리나라 예산은 11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열악한 형편이었다.
예산정책의 선택•유지기(1953~61)에는 경제 재건의 필요성과 그에 필요한 통화 관리가 예산정책의 지향점이었다. 1955년 2월 정부조직법을 대폭 개정해 기획국을 폐지하고 부흥부(復興部)를 신설했으며, 예산국은 재무부로 이관되었다. 재정법은 두 차례 개정되어 1961년 12월 ‘예산회계법’이 제정될 때까지 10년 동안 우리나라 예산 편성의 준거가 되었다.

▶ 찾아서1970년대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따라 울산석유화학단지(왼쪽)가 조성됐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사회복지가 강조되며 관련 예산이 100조 원을 넘어섰다. ⓒ동아DB
회계연도를 변경함에 따라 1955년에는 18개월이라는 최장 회계연도를 기록했고, 그에 따라 1956년도는 우리나라 재정사에서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특이한 경우도 발생했다. 1955년 9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 전문가 회의에 참가하고 돌아온 우리나라 대표들은 예산 개혁과 내용의 근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즉, 기능과 경제 특성에 따라 예산을 재분류하고, 정부 기업에 기업회계 제도를 도입하고, 일반 정부 부문에 성과주의 예산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예산정책의 투쟁기(1961~70년대 말)에는 정부조직법이 개정됨에 따라 예산국이 재무부에서 경제기획원으로 이관되었다. 이 시기에는 경제 발전이라는 확고한 목표에 따라 체계적으로 국가 예산을 운영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발점인 1962년에 정부는 개발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예산 개혁을 시도하며, 중화학공업 분야에 막대한 예산을 배분했다. 국가기획제도와 성과주의 예산제도를 새롭게 도입하고, 1962년에는 교통•체신•전매 분야의 공기업에 기업회계 예산제도를 도입해 경영 합리화를 시도했으며, 각종 특별회계제도를 신설해 특별회계사업이나 특정 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허용했다.
1970년대 초반에 들어서는 중화학공업 분야에 집중적으로 예산을 편성하면서도 새마을운동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농어촌 개발에도 많은 예산을 할당했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에는 재정건전성을 관리하는 예산정책에 역점을 두었지만,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에는 국방력 강화를 위해 국방 예산의 편성을 가장 우선시했다. 예산정책의 투쟁기에는 대체로 경제 안정, 국방력 강화, 농어촌 개발, 중화학공업 육성, 수출 촉진, 연구개발에 국가 예산이 집중되었다.

▶ 국회에서 정부 예산을 심의하고 있다. ⓒ동아DB
중화학공업, 국방, 경제, 복지 순으로 우선순위 변화
박근혜정부 들어 사회복지 예산 100조 원 넘어서
1980년대에는 경제성장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따라서 도로, 항만, 철도 등 생산 활동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경제 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데 꼭 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비롯해, 중화학공업의 구조조정, 산업 지원 같은 경제정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예산정책이 추진됐다. 1982년에는 모든 국가 예산을 원점에서 다시 보고 검토함으로써 재정 효율성을 높이는 ‘예산심의회’를 도입했다. 이 시기에는 전체 예산에서 국방 예산이 이전의 30%에서 20%대로 감소했지만 그래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이 시작돼 정보화 사업 분야에 예산이 많이 투입되었다.
1990년대에는 지방 재원 확충과 교육 같은 사회 분야의 예산 지출을 확대하는 동시에 신경제 계획을 뒷받침하는 예산정책이 유지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에 발맞춰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경제 분야에 대한 예산 지출을 확대했다. 특히 물류비를 절감하기 위해 교통세를 신설했으며 SOC에 대한 예산 배분을 대폭 확대했다. 이 밖에도 국가 과학기술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1990년대 말에는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가고 경제위기를 겪게 되자 금융 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자연스럽게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경제 살리기 부문에 많은 국가 예산이 할당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의 증가율과 성장 잠재력이 감소함에 따라 정부의 예산정책은 경제 분야에서 복지 분야로 대상이 서서히 전환되었다. 그렇지만 2008년 하반기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정 지출이 대폭 확대됨으로써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되었다.
2010년 이후에도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됨에 따라 박근혜정부는 사회복지 예산을 지속적으로 늘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56조 원에 불과하던 사회복지 예산은 박근혜정부 들어서 100조 원을 넘어섰으며, 2016년의 총 예산 386조4000억 원 중에서 보건•복지•노동 분야의 예산이 122조90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사회복지 예산이 크게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예산정책은 시대 상황의 변화에 발맞춰 중화학공업, 국방, 경제, 복지 순으로 우선순위가 바뀌어왔다고 할 수 있다. 1960~1970년대에 뿌린 중화학공업 예산이라는 씨앗이 국가 근대화와 경제 발전이라는 열매를 맺었다면, 그 번영의 바탕 위에서 이제 복지 예산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잠시 주춤하고 있는 성장의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는 국가 재정의 편성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탄탄하게 만들어줄 실효성 있는 예산정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글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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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