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필자는 여러 대학에서 기사 작성법을 가르친 적이 있다. 수강생 대부분은 기자, PD, 작가 지망생이다. 이들은 매주 과제를 제출해야 한다. 경찰서 방문기, 재판 방청기, 행사 르포 등등 다양한 글쓰기 경험을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 리포트를 작성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야 하니 학기 초에는 학생들이 부담스러워한다. 남의 것을 베낄 수가 없고, 독창적인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수강생들은 갈수록 적응하면서 '나만의 글'을 쓰는 묘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소설가 · 고승철
과제의 하이라이트는 인터뷰다. 인터뷰 대상자는 누구라도 괜찮다고 공지한다.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하든 거지를 만나든 마음대로 하라고….
"딱히 인터뷰할 인물을 발견하지 못하면 부모님이라도 좋다. 사진도 찍고 인터뷰 일시, 장소를 밝히라"고 했다. 말미에는 취재 후기를 덧붙여도 좋다고 했는데 이는 취재하는 이의 개인적 소회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과제물을 받아 읽으며 코멘트를 달아주는 필자는 내내 학생들의 열성적인 노력과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진지한 접근 자세에 감동을 받는다. 기억에 남는 몇몇 인터뷰를 소개해보겠다.
어느 여자대학교 구내에서 30여 년간 구두를 수선하는 신기료장수는 낡은 구두를 멋진 신발로 변신시키는 솜씨를 가졌다. 끌, 바늘, 샌드페이퍼 등을 사용하며 정성스레 구두를 손질하는 장인의 지극한 정성을 보고 취재 학생은 존경심을 품는다. "딸 같은 학생들이 멋있고 편안한 구두를 신도록 하는 일을 평생 했으니 나는 큰 복을 누린 사람"이라고 그 장인은 말한다.
서울역 앞 노숙자를 만난 학생도 있었다. 처음엔 말끔한 옷차림으로 가서 학교 과제로 인터뷰하러 왔다고 말하자 노숙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란다. 학생은 오기가 나서 자신도 허름한 옷을 입고 땅바닥에 뒹굴면서 말을 붙였다고 한다. 그랬더니 노숙자는 소주를 마시며 지나간 신산한 삶을 털어놓더라는 것. 외환위기 때 실직해 조개구이 식당을 차렸으나 6개월 만에 쫄딱 망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단다.
가수 조영남을 인터뷰한 학생도 있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스튜디오 앞에서 기다리다 방송을 마치고 나오는 조 선생에게 접근했더니 흔쾌히 응하더라는 것이다. 조 선생은 여러 연예인들의 모임에 가는 길이었는데 학생에게 동행을 허락했다. 유명 연예인들 사이에서 학생의 존재가 돋보여 오히려 인터뷰를 당했다고 한다.
어느 여학생은 아버지와 생맥줏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생 기자' 자격이라 하니 아버지는 딸에게 존댓말로 대답했다고 한다. 평소 무뚝뚝한 아버지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한 평생의 한을 털어놓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학생은 취재 후기에서 '이 인터뷰 덕분에 아버지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나는 언제든 흉금을 털어놓는 진정한 말벗이 되었다'고 밝혔다.
글 · 고승철 (소설가)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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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