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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21세기의 세계적 추세는 ‘무(無)데올로기’다. 동구권 몰락 이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고 좌파가 제구실을 못 하니 ‘우향우’ 바람이 몰아쳐 일본은 물론 프랑스, 영국에서도 극우파가 득세했다. 독일에선 ‘PEGIDA’라는 극우 성향의 반이슬람 단체마저 등장했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엔  유독 이데올로기가 넘쳐흐른다. ‘과(過)데올로기’라 할 만하다. 넘치는 정치이념은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스펙트럼으로, 민주주의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중간이념을 가진 사람을 회색분자, 기회주의자로 매도하고 오로지 좌냐 우냐 편 가르기를 하는 게 문제다. 분단된 한반도 현실에서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지나친 좌우 쏠림 현상은 사회의 소통과 통합을 어렵게 한다.


통합진보당에 해산이라는 된서리가 내렸지만, 대한민국의 과(過)데올로기 현상은 올해에도 뜨겁게 재현될 게 자명하다. 우리나라의 또 다른 고질적 병폐는 ‘표(票)불리즘’이다. 포퓰리즘은 선거를 치르는 나라에선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표만 불릴 수 있다면 영혼마저 파는 것을 마다 않는 우리네 정치 풍토가 절실한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재원도 없이 도입한 무상복지 제도라든지 종교인 과세가 번번이 좌절되는 것이 전형적인 표(票)불리즘의 산 예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잘나가는 나라에선 정치인이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고 ‘싫어도 할 것은 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서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던 아일랜드를 대개혁으로 수술해 이젠 그들을 800년이나 지배했던 영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8000 달러나 많은 나라로 탈바꿈시킨 1990년대 메리 로빈슨 대통령이 좋은 예다.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면서 수입선을 관세가 없는 EEC 국가로 돌리는 바람에 영국을 주 시장으로 삼던 1980년대의 뉴질랜드는 경제파탄을 겪었다. 1984년 집권한 데이비드 롱이 총리의 과감한 대개혁은 오늘날 탄탄한 뉴질랜드 경제의 기틀이 됐다. 그는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사회당 소속이면서도 이념에 반하는 정책까지 과감히 추진해 위기에 처한 뉴질랜드 경제를 살려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정책의 연속성이다. 아일랜드의 경우 메리 로빈슨 대통령의 정책을 후임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이 계승해 성공을 거뒀고, 뉴질랜드 롱이 총리의 개혁정책도 후임이 계승해 성공으로 이끌었다.


올해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큰 선거가 없는 해로, 개혁을 위한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이때에 부디 과(過)데올로기에 휩쓸리지 말고 표(票)불리즘에 의해 눈치 보는 일 없이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자고로 혁명보다 어려운 게 개혁인데, 싫은 것 안 하려 들면 개혁은 당연히 물 건너가는 법이다.

글 ·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201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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