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필자의 왼손 엄지손가락과 손목이 이어지는 손등 부분에 약 3cm쯤 되는 흉터가 있다. 세로로 비스듬히 찢어진 상처를 다섯 바늘 정도 가로로 꿰맨 후 생긴 흉터가 선명하다. 흉터의 위치 때문에 특히 글을 쓸 때 자주 그 흉터를 보게 되곤 한다. 키보드에 손을 얹고 있다가 무심코 키보드 쪽으로 시선이 내려가면 흉터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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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년 5월 27일에 생긴 흉터니까 필자의 손등 위에서 필자와 함께한 지도 벌써 만 13년이 지났다.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서울에서 천안으로 출근하던 길이었다. 대학교수로 임용된 첫 학기라서 월요일 아침은 늘 머릿속이 분주했다.
출근해서 챙겨야 할 일들을 생각하느라 집중력을 잃은 모양이었다. 갑자기 오른쪽 차선에서 달리고 있던 차와 너무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당황한 나머지 핸들을 왼쪽으로 틀면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는 고속도로 위에서 왼쪽으로 한 바퀴 반을 돌고 중앙 분리대 근처에서 전복된 채 멈췄다.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가 한 바퀴 반을 돌면서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이었다. 비현실적인 현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회색의 아스팔트가 하늘 위로 솟았다가 내려오던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고속도로 위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외상이 거의 없었다.
왼쪽 엄지손가락 아래가 찢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손등의 아주 작은 화상이 전부였다. 사실 사고 당시에는 찢어진 상처도 의식하지 못했다. 사고를 목격했던 사람 중 한 명이 달려와 휴지로 상처를 감싸주었을 때 비로소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깊게 파인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도 몰랐을 만큼 정신이 없었나 보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거나, 3차로에서 주행을 하지 않았거나, 전복되는 동안 왼쪽 차로에 차가 있었다면 사고로 즉사를 했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삶과 죽음의 거리는 정말 가까웠다. 그날의 사고 이후 삶을 대하는 필자의 태도는 많이 바뀌었다.
우선 인생에서 내일이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 주어진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또 오늘이 가면 내일이 못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손발이 오글거리는 말을 하는 데 남들보다 쉽게 용기를 낸다. 손발이 오글거린다고 그 말을 하지 않는다면 영영 그 말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면 너무나 한스러울 것 같다면 당장의 오글거림 정도는 충분히 참을 만하다.
시간은 흐르고 그날의 기억은 점점 흐려진다. 그날의 기억이 흐려지는 만큼, 그날의 감사함과 다짐을 가끔 잊기도 한다. 하지만 손등 위의 흉터를 보면 그날의 감사함과 다짐이 다시 떠오른다. 또 그날의 다짐이 흐려질 때, 소중한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은 상처를 주었을 때, 일상에 묻혀 오늘 하루의 감사함을 잊을 때, 필자는 손등의 흉터를 본다.
흉터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상처가 아물고 남은 자국’이라고 뜻풀이가 되어 있다. 하지만 필자에게 흉터는 단순히 상처가 아물고 남은 자국이 아니다. 그날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흔적이다. 그래서 흉터는 ‘성찰을 위한 고마운 흔적’이라고 풀어야 더 맞을 것 같다.
글 ·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1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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