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몇 년 전 부산고검장으로 있을 때 일이다. 부산항만청의 초대로 배를 타고 부산항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부두와 바다에서 바라보는 부두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부산항을 거의 한 바퀴 돌았을 무렵 특이한 장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정박한 배가 부둣가에 지어진 건물과 굵은 파이프로 연결돼 있었다. 연료 파이프라고 하기에는 너무 굵고 해서 궁금증이 일었다. 안내자에게 물어보니 곡물을 실은 배가 파이프를 통해 곡물을 하역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파이프 주변에는 하얀 가루가 눈처럼 내렸다. 곡물 부스러기였다. 파이프 위에서는 수많은 새가 곡물 부스러기를 쪼아먹고 있었다. 이런 천국이! 어렵게 날아올라 낱알이나 벌레를 찾지 않아도 눈앞에 낱알이 눈처럼 쌓여있는 것이다. 새들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을 듯했다. 우리가 늘 부러워하던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놈들 참 좋겠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안내자가 말했다.
“새들이 날지 않고도 저렇게 먹을 수 있다 보니 너무 먹어 뚱뚱해져 잘 움직이지 못합니다. 도로에 떨어진 낱알을 주워먹다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치여 죽는 새가 부지기수입니다.”
풍요가 새들에게는 오히려 죽음을 부르는 재앙이라는 말이었다.
문득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옛날 노르웨이 어부들은 주로 정어리를 잡았다. 정어리는 성질이 급해 잡자마자 죽어버린다. 그래서 어부들은 정어리를 잡으면 바로 냉동 처리했다. 그런데 한 어부만은 정어리를 산 채로 잡아왔다. 살아있는 정어리는 냉동 정어리보다 몇 곱절 비쌌다. 그러나 그 어부는 누구에게도 그 비결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그 어부가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가 산 채로 정어리를 옮긴 비결이 궁금해 그의 어선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의 어선에서는 이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수조에서 메기 한 마리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무릎을 쳤다. 수조 안에 넣은 정어리들은 메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느라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아널드 토인비 박사가 즐겨 인용했던 이야기다.
나는 어린 시절 몸이 몹시 약했다. 달리기는 늘 꼴찌였다. 축구를 해도 골 한번 넣어본 기억이 없다. 별명은 늘 ‘갈비씨’였다.
몸으로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전지검장 시절 아침마다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남들은 한 달이면 상급반으로 옮겨갔지만 나는 무려 석 달이나 강사의 핀잔을 들으며 같은 수업을 듣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악착같이 공부하는 길밖에 없었다. 대학시절에도 형편이 어려워 친구들과 놀러 다니거나 연애하는 것 등은 내게는 사치로 여겨졌다. 나의 이런 부족함이 사법시험 합격에 매진하도록 만든 배경이었다고 믿는다. 지금도 문득 조금만 더 여유로웠으면 하는 욕심이 일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곡물 컨테이너의 새나 메기가 든 수조의 정어리를 떠올린다.
부족함은 늘 나의 안일한 일상을 깨우는 ‘죽비(竹?)’ 역할을 한다. 부족함이 때로는 축복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글·조근호 (변호사·전 법무연수원장)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