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학창 시절부터 똑같은 멜로디로 함께 부르는 제창에만 익숙했다. "애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진행 발언에 따라 크고 작은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른 횟수가 무릇 몇 번이랴. 초·중·고교 음악시간에도 늘 이런 방식으로 노래를 불렀다. 남자 중·고교에서는 거의 모든 노래를 군가처럼 씩씩하게 불러야 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를 우렁찬 목소리로 제창하면 서정적인 가을 분위기는 사라지고 독수리가 여름 창공을 치솟는 소리가 났다.
파트별로 성조를 달리해 아름다운 화음을 빚어내는 합창은 학교에서 단 한 번도 배운 기억이 없다. 전원이 똑같은 소리를 내지 않는 노래를 굳이 꼽는다면 '돌림노래' 정도였다. 돌림노래를 부를 때는 다른 파트의 소리를 잘 듣고 이어가야 하는데 혹시 그 소리를 따라갈까봐 귀를 막고 자기 소리만 내는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합창의 진정한 묘미를 실감한 무대가 있었다.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 남성 목소리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감미로운 선율을 뽑아내는 고품격 향연! 2015년 12월 12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종CEO합창단의 제8회 공연…. 필자는 새내기 단원으로 연말 정기공연 무대에 처음으로 섰다. 무대 뒤 출연자 대기실에 있다가 관람객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할 때 가슴이 어찌나 설레던지.
입단 테스트 때 합창단 지휘자인 소프라노 임미선 음악감독 앞에 서서 "아~아아아~아…" 하고 목소리를 내고 베이스 파트로 분류됐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이나 '코스모스를 노래함' 등 널리 알려진 한국 가곡도 베이스는 주 멜로디와 다른 소절이 많아 몸에 밸 때까지 수없이 불러 익혀야 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들어온 가장 익숙한 캐럴인데도 영어 가사로 부르려니 녹록지 않았다.
이탈리아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로'도 이탈리아어로, 더욱이 나폴리 방언으로 부르려니 처음엔 혀가 꼬여 제대로 발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중학생 때 배운 영어 격언 '연습하면 완벽해진다(Practice makes perfect)'를 믿고 중얼거리니 어느덧 입에서 그 가사가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단원 26명은 저마다 일상이 바쁜 분들이어서 쪽지에 가사를 적어 틈나는 대로 꺼내 보며 암송했다. '아기 예수 나셨네'라는 프랑스 캐럴에는 한글로 '드? 쁠뤼 드 꺄트르 밀랑…'이라 토를 달아 외우는 방식이었다.
김희연 피아니스트,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의 반주로 10여 곡을 발표했다. 같은 멜로디로 부르다가 테너, 바리톤, 베이스 각자 성부(聲部)로 화음을 이룰 때 합창의 진가가 느껴졌다. 흑백영화를 보다가 컬러영화를 보는 느낌이라 할까. 내 성부 못잖게 다른 성부의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이영광 시인이 엮은 시집 〈홀림 떨림 울림〉 제목처럼 나는 노래에 홀려 가슴이 떨렸고 그 음률은 몸 전체에 큰 울림으로 남았다. 열린 귀로 남의 목소리를 들으며 부르는 합창이야말로 소통과 공감의 가장 좋은 수단이 아니겠는가.
글 · 고승철 (소설가)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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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