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 8월 24일 자정을 넘긴 시각,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6개 항에 이르는 남북한 '공동 보도문'을 발표했다. 사흘이 넘는 시간 동안 손에 땀을 쥐고 남북한 고위급 접촉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는 위기로만 치닫던 한반도의 긴장 국면이 극적인 타협과 합의로 막을 내린 결과에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박인휘 ·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이젠 어려운 타결을 도출해낸 배경과 향후 과제에 대해 생각해볼 때다.
먼저,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 원칙 있는 대북정책 기조가 큰 몫을 했다. 박근혜정부는 집권 초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창의적 대북정책 기조를 내걸었고,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도 남북한 사이에 결국 '신뢰'가 형성되지 않고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입장을 시종일관 강조해왔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도 정부는 북한의 확실한 입장 표명과 재발 방지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마침내 북한의 '유감' 표명을 이끌어냄으로써 이러한 원칙을 관철시켰다.
둘째, 협상 과정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정부의 지혜와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북한은 협상에 임하는 최초의 순간부터 '확성기 방송 중지'라는 매우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고, 이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올인(다걸기)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군사적으로 으름장을 놓아봤지만, 결국 북한의 입장에선 담판 형식을 통해 우리 정부에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 이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점을 간파했고, 앞으로의 단계들을 내다보면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더 큰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북한을 너무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었다.
셋째, 한·미동맹의 긴밀한 협조체계를 들 수 있다. 8월 4일 목함지뢰 사건 발생 이후 북한은 위기를 점진적으로 고조시키는 전형적인 전술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한·미 양국은 B-52, B-2 전략폭격기 등과 같은 '전략적 자산'을 공유한다는 안보 확약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위협과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북한이 군사적 옵션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이번 남북 고위급 협상 타결은 이상과 같은 배경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남북관계의 진정한 발전과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긴 여정을 밟아나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확성기'라는 우리가 지닌 전형적인 소프트 파워(Soft Power)에 북한이 저렇게까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점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버텨온다고 생각했던 북한이었는데, 그 이면엔 우리가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의외의 취약함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우리가 고민하고 수립해야 할 정책 개발의 윤곽은 더욱 자명해진다. 확성기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 우리 체제의 우월함과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을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소프트 파워 수단을 적극 개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창의성, 역동성, 개방성 등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게 다양한 네트워크적 접촉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야 할 것이다.
남북관계는 어느 한 측면과 관점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매우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국제 안보 환경이라는 변수는 한반도 수준을 넘어서는, 우리에겐 힘들고 버거운 과제다.
다행히 이번 협상을 계기로 북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전면에 나설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향후 당국자 접촉과 이산가족 상봉 준비 단계에서 북한이 계속 협상 테이블을 떠나지 않고 우리와 마주앉을 수 있도록 전략적 지혜와 국민적 지지가 절실히 필요하다.
글 ·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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