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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풍경의 아름다움은 슬픔에 있다

지난해 지인이 추천한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을 읽고 나니 이스탄불로 떠나고 싶었다. 아니, 마음은 이미 이스탄불로 향했지만, 언젠가 가겠다는 다짐만 한 채 돌아다니는 사진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다 지난달 이스탄불을 찾게 됐다. 풍경의 아름다움은 슬픔에 있다는 파묵의 도시 이스탄불이다.

이스탄불 코앞의 섬들은 예외 없이 모두 그리스 땅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국가 간의 경계는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케말 파샤)이 정했다. 지중해와 에게해의 수많은 섬을 포기하고라도 오스만 제국의 수도를 가져야 한다는 그의 판단이 오늘날 이스탄불을 존재케 했다. 파란만장한 제국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운전사들이 고래고래 고함치고, 그랜드 바자의 상인이 손짓하며 흥분하고 있다. 밤은 서울의 홍대입구보다 찬란하고, 클럽은 미국 맨해튼의 광란을 능가한다.

 

김동률  

▷김동률 · 서강대 기술경영(MOT)대학원 교수

터키는 우리와는 유달리 친하다.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문명과 문명이 만나는 단층국가로 이슬람과 기독교권이 보스포러스해협을 경계로 만난다. 터키는 오랜 세월 서구 시스템에 자신의 나라를 어떻게 적응시킬까를 고민해왔다.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가 차도르 등 이슬람 복장을 강제화한 것과는 반대로 터키는 착용 금지를 법제화했다. 한때는 잠옷까지도 서양식으로 입도록 했다.

전통 이슬람 문화를 내팽개치고 수염도 열심히 깎으면서 유럽을 따라잡기 바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천신만고 끝에 독립한 탓에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이 한몫했다. 결국 나토(NATO : 북대서양조약기구) 일원이 됨으로써 냉전시대에는 완전히 유럽의 일원으로 된 듯했다. 그런 터키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유럽연합(EU) 가입이다.

그러나 EU 가입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작고 가난한 나라인 앙숙 그리스마저도 보란 듯이 EU 일원으로 지원을 받고 있지만 터키는 외톨이 신세다. 터키의 인권 상황이 EU 기준에 미흡하다는 게 겉으로 드러난 이유지만 EU 회원국 대부분이 기독교권인 반면 이슬람 국가라 거절당하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터키보다 늦게 신청한 동유럽 소국들조차 대부분 EU 회원국이 되었다.

결국 한 세기 가까이 유럽을 짝사랑해온 터키가 요즘 느끼는 것은 좌절감과 비애다. 사실 EU가 하나의 단일국가로 탄생할 수 있고 정치·경제적 공동기구로 묶일 수 있는 것도 기독교라고 하는 단일문화권 아이덴티티가 있기 때문이다. EU 가입을 놓고 번번이 물을 먹자 터키의 지식인들과 여대생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차도르를 쓰고 서구화 과정에서 방치했던 이슬람 사원을 복원하자는 반발 흐름까지 등장하고 있다.

슈펭글러나 토인비 등은 "서구 문명이란 많은 문명 중의 하나임에 불과하고 따라서 모든 인류가 그것을 숭상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들어야 할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터키에 대한 EU의 태도는 배타적인 기독교 국가들의 이율배반이나 다름없다.

사뮈엘 헌팅턴은 "기독교 문명 대 이슬람·유교 문명 간의 대립이 결국 과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처럼 거대한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처럼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정치·경제적인 이유보다 치유와 화합을 훨씬 어렵게 한다. 이는 하루가 다르게 다문화 국가로 바뀌어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때 세계사를 주름잡았으나 지금은 서양사의 초라한 변방으로 밀려난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 골목길은 화려했던 과거의 비애를 보여주고 있다. 풍경의 아름다움은 슬픔에 있다.


·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MOT)대학원 교수)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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