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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동유럽 폴란드와 체코는 아득히 먼 나라였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공산주의 체제에서 갓 벗어난 나라들이어서 매우 이질적이었다. 한국 대학생이 배낭 메고 그곳에 관광여행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때였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바웬사 노조위원장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그곳에 신문사 특파원 신분으로 취재차 갔다. 상점에 생필품이 거의 없었고 호텔 시설과 서비스도 여러모로 미흡했다.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시내엔 거대한 빌딩이 몇 개 보였는데 전체주의 체제의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듯했다. 행인들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그곳엔 소통이 태부족함을 알 수 있었다.

폴란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동독의 '프랑크푸르트 암 오데르'라는 도시에 갔다가 오데르강을 건너 맞은편 폴란드 국경도시에 들어갔다. 혹독한 가난에 찌든 그곳 주민들의 남루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서유럽 선진국에서 태어났으면 패션모델을 했을 만한 선남선녀들이 땟국물이 흐르는 옷을 입고 빈둥거렸다. 수십 년간 공산당 독재정권의 경제정책 실패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1990년대 초 여름휴가 때 가족들과 함께 독일·체코 국경을 승용차를 몰고 넘은 적이 있다. 체코에 들어가자마자 웬 여성들이 몰려와 승용차를 가로막는다. 짙은 화장을 한 그녀들은 거리의 여성들이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려니 민망했다. 그 후 체코 수도 프라하에 혼자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상점은 텅 비었고 호텔에서도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았다. 서방에서 온 관광객은 몇몇 보였으나 한국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체코 국립극장 현수막에 소개된 오페라 주역의 이름이 '김산기'여서 북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극장 당국자에게 물어 그의 호텔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통화했더니 서울 출신이란다.

세월이 흘러 2015년.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폴란드, 천년의 예술'이라는 기획전시가 8월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쇼팽,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이라는 폴란드에 얀 마테이코, 야체크 말체프스키 같은 천재화가가 있는 줄 몰랐다.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타데우시 칸토르가 폴란드 출신이라는 사실도 전시회에 가보고서야 알았다. 폴란드 미술의 진수(眞髓)를 가져온 귀중한 행사인 듯하다. 폴란드에 민주화 물결이 밀려온 지 25년 여. 폴란드는 경제, 문화, 인권 등 여러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활발한 소통의 덕분 아니겠는가.

지난 7월 초에 체코 프라하를 방문했다. 마트에는 생필품이 넘쳐났고 영어도 잘 통했다. 관광객들은 시내 곳곳에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여름방학을 맞은 한국 대학생들도 수두룩했다. 프라하 공항에 걸린 안내판 표시문은 체코어, 러시아어, 한글, 이렇게 3개 문자로 표기돼 눈길을 끌었다. 한자나 일본 글자도 아닌 한글이 쓰였다니 한국인 방문객이 그렇게 많다는 뜻인가? 올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체코의 유리공예품을 모은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 전시회가 열렸다. 그 화려한 공예품에 압도당했다. 보헤미아의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이런 예술을 낳은 것이다.

폴란드와 체코, 먼 이방(異邦)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행보가 넓어진 덕분이다.


· 고승철 (소설가)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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