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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법원 사건기록 표지 원고는 紅, 피고는 靑

최근 들어 소송에 사용되는 양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이 2014년 9월부터 이혼소송 소장(訴狀) 양식을 개선한 사례를 보자. 그동안 이혼소송 당사자들은 상대방의 잘못을 많이 적는 게 소송에 유리하다고 판단해서인지, 상대방을 비방하고 모독하는 글의 분량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기존의 서술형 질문이 “다음 중 이혼 사유를 고르시오”라고 물어보는 객관식 질문으로 바뀐 것. 혼외 성관계, 알코올 중독, 장기간 별거, 폭행 같은 37가지의 파탄 사유 중에서 3, 4개를 고르게 하는 ‘선택형 객관식’이다. 이는 이혼 당사자 간의 2차 상처를 예방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획기적 발상이다. 이처럼 법원의 소송 양식은 국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계속 개선돼왔다.

 

법원 행정처의 광고 ‘색채 용지’편(경향신문 1962년 12월 22일)을 보자. “소송기록 색채로 구분된 용지 사용에 대하여 알리는 말씀”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1963년 1월 1일부터 민사소송 및 이에 준하는 기록 작성에 색지(色紙)를 사용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그 이유를 상세히 설명한 다음 장단점을 제시하고, 그다음에 색채의 구별 방법을 간단명료하게 나열했으며, 마지막으로 채색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정책

▷ 소송 서류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1962년 법원 행정처 신문 광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서류 작성에 있어 원고 피고 및 법원이 제각기 다른 색채로 된 용지를 사용함으로써 시간과 노력의 낭비를 막을 수 있고 그 사건을 1분이라도 신속하게 처리하여 드리고자” 색지 사용으로 바꾼다고 했다. 원고와 피고 및 법원이 서류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소송 심리의 시간과 노력이 절약되며, 용지 규격의 통일로 간편하고, 용지의 비용은 종전과 다름이 없다며 색지 사용의 4가지 장점을 강조했다. 단점은 소송 관계인이 정해진 용지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 혼란을 초래한다는 한 가지만 들었다. 억지로 단점 하나를 만들어낸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원고는 홍색(紅色), 피고는 청색(靑色), 법원은 엷은 녹색(綠色)으로 표지 색채를 구분했다. 사건기록의 표지는 소송의 기본 사항을 집약시킨 사건의 얼굴과 같다. 표지에 사건 접수일자, 사건의 종류, 사건 번호, 사건명이 나타나 있으니 표지에 사건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셈이다. 그동안 사건기록의 표지도 숱한 변화를 거듭했다. 사건기록의 표지는 ‘법원 공문서 규칙’에 따라 1961년에 처음 등장했다. 광고에서 알 수 있듯이 1963년부터는 ‘민사·행정소송 사건기록 색채용지 사용 요령’에 따라 용지의 하단과 오른쪽 중앙에 채색을 했다.

 

서류를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철끈으로 묶으면 분량 때문에 삐뚤빼뚤해지기 마련이었다. 대법원은 1964년 3월 각급 법원에 사건기록을 상급심으로 송부하기 전에 반듯이 정렬해서 보내라는 통첩을 보냄으로써 속칭 ‘각 잡기’가 유행해 펀치가 보급되기 전까지 계속됐다. 1979년부터는 두꺼운 사건기록의 마멸을 막고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비닐 표지를 썼으며, 1993년부터는 많은 기록을 보자기에 싸서 법정으로 옮기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네 바퀴 달린 큰 수레가 등장했다.

 

이제는 대법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양식 모음’을 클릭하면 소송에 필요한 모든 양식을 내려받을 수 있다. 실로 흥미로운 사건기록의 변천사를 돌아보았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더 변할 것인가. 이런저런 소송에 필요한 법원 양식이 지금도 100여 가지나 된다고 한다. 이참에 유사한 양식을 통합하고 단순화해 그 가짓수를 대폭 줄이면 어떨까 싶다. 법률 문외한이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원을 향해 그런 기대를 해본다.

 

 

·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장) 20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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