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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19세기 프랑스의 천재 시인 보들레르가 '새벽 한 시'에 마침내 혼자가 된 것을 기뻐하며 창밖의 마차 굴러가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는 휴식이 아닌 고요를 먼저 갖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러니까 이제 나는 어둠의 늪 속에서 휴식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자물쇠를 이중으로 잠그자. 이렇게 자물쇠를 잠가두면, 나의 고독은 더욱 깊어지고, 지금 나를 외부로부터 격리시키는 바리케이드가 더욱 단단해지는"이라고 표현합니다.

보들레르

이러한 마음 상태는 릴케에게서도 보입니다. 그는 "자기의 최상의 말 앞에서는 스스로를 걸어 잠그고 그 고독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말은 신선해져야 하니까요. 그게 세계의 비밀입니다"라고 우리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위대한 두 시인이 모두 자물쇠로 자신의 방을 잠그고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문학을 하는 태도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거장이라고 부르는 천재들은 독방의 자물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시인 보들레르에게 '서구 현대시의 시조'라는 월계관을 선물하고 온갖 상찬(賞讚)을 하고 있지만 결국 그는 고독한 인간입니다. 그 고독의 힘으로 탄생한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에는 '고독'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시인은 이 글에서 그날 만난 한 신문기자가 "고독은 사람에게 해롭다"라고 한 말에 대해 고독이 필요한 이유를 우리들에게 역설하고 있습니다.

"'혼자 있을 줄 모르는 이 불행!' 라 브뤼에르는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했다. 틀림없이 자신을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두려워 대중 속에 자신을 잊으려고 달려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해서 한 말이다.

'우리의 불행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방에 남아 있을 수 없는 데서 온다.'라고 또 하나의 현인 파스칼은 말했다. 그는 이 말을 하며 명상의 독방 속에서 모든 미치광이들을 떠올렸으리라 생각한다. 현대의 가장 그럴듯한 표현으로 부른다면 우애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매음 속에서 그리고 법석 속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저 미치광이들을." (<파리의 우울> 중 '23 고독', 윤영애 옮김, 민음사)

천재의 광기에 사로잡힌 시인은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미치광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과연 그렇습니다. 마치 덫에 걸린 짐승처럼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수십 통의 메시지를 날리면서 단 1초도 혼자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 사람, 사람들. 차라리 보들레르의 19세기는 지금과 비교하자면 적막한 시대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기술의 발달로 개인의 비밀스러운 정보를 비롯한 은밀한 사생활까지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어 마치 전체주의 국가처럼 숨 막히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행복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 고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보들레르의 시 한 편을 읽을 시간도 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미치광이가 되어 있는 사람들 속에서 나의 영혼이 메말라버릴 겁니다. 이제는 중환자가 되어버린 우리들의 영혼에 고독이라는 처방전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 원재훈 (시인) 201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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