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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태어나서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

태main

 

태big교통사고를 냈다. 느리게 가는 앞차를 추월하려다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는 차를 들이박은 것이다. 산골짜기 굽이진 2차선 도로에서였다. 불시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영문도 모른 채 마주 오던 차에 탑승한 사람이 다치게 되었고,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은 내 차 때문에 길이 막혀 차들이 길게 정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부딪힌 차에 탔던 사람이 오히려 가해자인 나를 부축해 차에서 꺼내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일단 피해 차에 탔던 사람이 많이 다치지 않은 것 같아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내가 멀쩡하게 숨을 쉬고 있다는 것조차 부끄러웠다. 단 5분을 먼저 가자고 이런 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나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치다니.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있어도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아! 나 역시…

돌이켜 생각하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얼마나 자주 추월을 해왔던가? 사소한 일에도 조금이라도 더 성공하고자,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많이 챙기고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려가고자, 사회의 법과 규칙을 어기고 눈치껏 재빠르게 끼어들고, 과속하고, 그러면서 급브레이크를 수없이 밟으며 달려오지 않았던가? 이 나이쯤 되어 돌이켜보면, 인생은 먼 길이었다. 한두 사람 추월한다고 먼저 가는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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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양보하고 질서를 지키며 아름답게 어우러져 함께 가야 하는 인생길이다. 늘 그렇게 번지르르하게 말하며 글을 써왔던 나다. 그런 내가 도시도 아닌 한적한 산골길에서 이렇게 파렴치한 사고를 내고 만 것이다. 제 목숨을 지키는 안전띠조차 목 부분이 껄끄럽다고 눈속임으로 매고 있었으니. 에어백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나마 변변치 않게 생긴 내 얼굴은 라면 냄비처럼 찌그러졌을 테고, 핸들에 부딪힌 내 심장은 5천원짜리 수박처럼 터져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같은 여자로서 나는 평소 유관순 열사의 죽음을 동경해왔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배운 위인인데, 그렇지 않아도 수많은 애국자의 값진 희생을 되새겨야 할, 광복절이 있는 이 엄숙한 8월에 나는 길거리에서 개죽음할 뻔했다. 평소 준법정신이 철저하지 않았던 못된 습관 때문이다. 교통사고를 내고 나서 보니 이 세상은 법과 질서를 지키는 자들만이 살아갈 자격이 있는 곳이다.

질서란 함께 달려가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약속이다. 나 같은 사람 하나 때문에 무작위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 그의 어린 자녀들을 느닷없이 고아로 만들 수 있다.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온 젊은 119대원이 한눈에 척 보아도 나이 많은 나에게 “어머님! 괜찮으십니까?” 하고 물었는데, 아, 부끄러워 차마 자식 같은 사람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젊은 사람들에게 삶의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게 무슨 꼴이냐.

피서철이 막바지에 닿고 있다. 한적한 시골 길이라고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은 금물. 여름휴가를 맞아 산골짜기 집을 찾아오는 아들아! 교통법규 잘 지키며 오너라. 아이고! 어미로서 이 말 하기가 왜 이리 부끄러운 것이냐.

글·유금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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