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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네 등이 내 등이고, 내 등이 네 등이다

1

 

4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어디일까. 어떤 이는 머리에서 가슴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지구의 오지 중 어디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남태평양의 작은 섬 아누타에 가기에는 사실 멀어도 너무 멀다. 이런 과학적인 거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거리는 그때그때 달라지기도 한다.

요즘 나는 ‘나의 등’이 세상에서 심리적·과학적으로 가장 먼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자세를 취해도 바라볼 수 없고 걸어서는 절대 갈 수 없는 곳, 나의 등. 나의 등을 바라보는 순간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너무 멀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타인의 등을 바라보았다. 초겨울 도로에 떨어진 낙엽들이 자동차 바퀴 밑에 처참하게 나뒹굴고 있는 풍경을 배경으로 우연히 나는 한 사내의 등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나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그 사내는 서류가방을 들고 마을버스 정거장에 서 있었다. 낙엽이 참으로 처량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등을 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그의 등이 마치 거울처럼 보였던 거다. 나는 탄식했다.

‘야, 이것 참 대단한 일이구나.’

2
그날은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국가유공자인 아버지는 지금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원에 있는 충혼당에 잠들어 있다. 충혼당의 3번 제례실에서 제사를 지내고 내려와 제3 장군묘역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는데 문득 아버지 말년에 바라보았던 등이 생각났다. 당신께서는 등을 잘 보여주지 않으셨는데 병석에 누워 계시면서는 거동이 불편하신지 등을 자주 보여주셨다.

그 건장하시던 분이 어린아이처럼 가벼워져, 병원에 다녀올 때면 5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을 내가 업어 드리곤 했다. 아마도 내가 아버지와 가장 가까이 지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 돌아가신지 벌써 4주년이 되니 당신이 극락왕생하셨기를 바랄 뿐이다. 그날 제사를 드리고 오는 길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비야, 너의 아버지는 극랑왕생하셨다.”

“무슨 말이세요?”

“여기를 봐라. 현충원처럼 좋은 곳이 세상에 어디 있겠니?”

어머니 말씀을 따라 현충원을 바라보니 과연 풍경이 딴 세상 같아 보였다. 비석들이 가지런하게 놓인 모양도 삶의 코스모스 형태였고, 우리나라를 위해 공이 있는 분들이니 그 영혼의 무게가 아름답고 투명했다. 어머니 말씀이 옳았다. 여기가 바로 극락이다.

나는 그날 사람의 등을 생각했다. 등은 우리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땅바닥에 닿는다. 길바닥이거나 방바닥이거나 모두 바닥이다.

삶의 끝은 등에 있다. 그러니 끝까지 가지 않고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 등을 세우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등을 바라볼 수는 없지만 타인의 등은 바라볼 수 있다. 그들이 감추고 있는 그림자와,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슬픔이 등에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과 사람이 가장 가까워지는 길이 등에 나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곳, 먼 거리가 등이라고 했지만…, 내가 타인의 등을 바라본다면, 그 등을 나의 등이라 생각하면 그렇게 가까운 거리도 세상에 없다. 오늘, 타인의 등을 바라보면서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본다.

글·원재훈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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