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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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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가 숙녀와 유지하는 거리에 따라 품격이 유지되듯, 사람이 책과 유지하는 거리가 결국은 모든 인생의 거리가 된다. 나의 직업상 때론 어쩔 수 없이 책을 읽기도 한다. 나의 관심분야가 아니라도 정보를 위해서 또는 쓰고 있는 원고에 적절한 인용을 위해서 때론 코란도 보고 제품 사용설명서도 읽는다. 우리가 사는 일도 이러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책 속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늦은 시간 빛나는 가로등을 보면서 그 가로등이 비추어주는 건물과 골목길, 그리고 은행나무 몇 그루 이런 것들이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만들어준다. 책 속에는 우리 인생의 골목길을 밝혀주는 가로등이 있다. 우리 인생을 낮과 밤으로 본다면, 때론 환희와 영광의 순간이 있다. 금메달을 수상하기 위해 시상대에 올라가는 메달리스트 같은 순간이 그저 그런 일상을 사는 장삼이사에겐들 왜 없겠는가. 하지만 거기에서 내려오는 순간이 있다. 어둡고 축축하고 우울하고 때론 미칠 것 같다.

그 공간이 어둠의 공간이고 거기에서 버텨야 다시 다음날 해를 본다. 그때 가로등이나 호롱불이 있다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요즘 40, 50대 아니 20대의 청춘들도 아프다고들 하는데 그것이 바로 가로등이 없는 골목길을 걸어가는 심경이다. 책은 그들에게 비아그라 같은 효과는 절대 줄 수 없지만 한 모금의 물이거나,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은 효과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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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이제는 독서등을 밝혀야 할 시간이다. 폭염의 여름은 이제 지나간다. 세상의 모든 고통은 견뎌내는 자들에게는 지나가는 길일 따름이다. 독서등을 켜고 그 고통을 직시하자.

책을 읽자. 태양 아래서 열심히 일을 했다면 하루에 적당한 시간, 아니 일주일에 적당한 시간을 골라 독서등을 켜고 책과 나, 그리고 삶과 나의 거리를 유지하면 좋다. 그 시간에 책을 본다는 것은 책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소설이나 시, 혹은 인문학 서적을 우선 권하고 싶다. 그 책들은 인간의 모양을 가장 많이 닮아 있어 어떤 페이지를 넘기면 울고 있는 내가 있고, 어떤 페이지를 펼치면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한 남자가 개처럼 주저앉아 있다. 그런 거리가 나를 보게 하고, 나를 보고나서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으니 어찌 뒤로 미룰 일인가.

최근에 나는 매우 아름다운 여성에게서 지루한 일상에서 일탈을 하자는 유혹의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마침 나는 불경을 읽고 있었고, 그 메시지가 온 순간에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우친 ‘12연기론’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메시지가 결국은 무명(無明)이라는 것, 무명이 세상의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은 불경에 너무나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내가 만약 그때 야설이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더라면 미친듯이 달려갔겠지. 달려가서 부적절한 행위까지는 몰라도 하여간 에너지를 매우 낭비하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 염천에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사랑은 밀접한 거리의 유혹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의 그리움에서 오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여간 나는 불경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기론을 읽느라 그 날을 잘 보낼 수 있었다.

나에게는 나의 삶이 있다. 누구의 흉내도 내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것. 이것이 희랍인 조르바의 자유가 아닌가. 독자들이여! 이번 달에는 가로등과 독서등을 사랑하자. 길에서는 가로등에 감사하고, 독서등을 켜고는 내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감각을 배우자. 간혹 책은 일상의 경험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선물을 당신에게 한다.

글·원재훈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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