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일산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제법 한가한 거리풍경을 본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데 한 여성이 내 옆자리에 앉는다.
나는 다리를 모으고 어깨가 닿지 않게 힘을 주었다. 좁은 공간이지만 그녀는 차창을 내다보면서 제법 편하게 앉아 있다.
연세대 앞에서 그녀는 내리려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려다가 멈칫한다. ‘잠깐 자리를 내주세요’라는 메시지다. 내리기 쉽게 공간을 넓혀줘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다리를 오므리고 몸을 옆으로 틀어 준다. 그 좁은 공간으로 여자는 조심조심 내린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그녀가 내리기 편하게 해 주었다. 그녀가 깜짝 놀라면서 고맙다고 한다. ‘뭐가 고마운가, 당연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녀가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 푸른색 스커트가 여름 바람에 찰랑거린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성추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상당히 시달리고 있구나. 지하철이나 버스에 타면 옆자리의 남자가 쩍벌남이 되어 몸을 닿게 하려는 행동에서부터 과감하게 몸을 더듬기도 한다.
버스의 좌석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몸이 닿지 않게 내가 일어나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 정도의 예의는 남녀 사이에 일상이 돼야 한다. 그건 고마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문화적인 것이다.


여성들이 폭력에 시달리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조차 긴장을 한다면 우리 사회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거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신사들이여! 모르는 여성에게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 당신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이 달라지고, 그 시선 하나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윤활유가 된다. 타인과의 신뢰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일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무들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야 잘 자라는 모습을 보고, 나무와 나무가 서로 쳐다보는 저 정도의 거리로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예의를 차린다면 좋겠다. ‘나무들은 그리움의 간격으로 서 있다’라는 문장에서 ‘그리움’이라는 감상적인 단어를 치워 보면 그 자리에 들어갈 말이 많다. 사랑, 신뢰, 예의 등등. 사람들은 서로에게 얼마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까,
이것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이다. 연인끼리의 거리가 있고, 친구 간의 거리가, 직장동료 간의 거리가 있다. 적당히 떨어지기도 하고 딱 달라붙어 서로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한다. 이러한 거리에 의해서 서로 타인인 우리는 서로 존경하기도 하고 서로가 열정으로 사랑한다는 거고, 이는 생명 탄생의 신비로운 감정의 발로이기도 하다.
거리가 무너질 때 폭력이 탄생한다. 서로의 주먹이 얼굴을 치고 받는다. 멱살을 쥐고 흔들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서로 간의 거리가 무너진다.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에서 한 여성과의 에피소드는 다음 정거장으로 가는 동안 나에게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버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나는 나와 같이 걷고 일하고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신사들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신사들이여!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 그러면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다.”
모르는 여자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아는 여자와 더욱 친밀한 거리를 유지한다면 당신은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선비이고 영국 신사의 품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글·원재훈 (시인·소설가)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