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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절판(絶版)되어 구할 수 없는 줄로 알았던 1970년대 밴드 송골매의 1집앨범을 최근에 구했다. 이 음반이 발매된 것은 1979년이었다. 음반 재킷에서 스물여섯 살의 배철수와 다른 멤버인 지덕엽·이응수·이봉환의 사진을 발견하고 공연히 쑥스러워졌다. 이들에게 열광했던 중학생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추억은 청각(聽覺)으로 복원할 때 가장 명징하다. 송골매 1집의 ‘세상만사’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산꼭대기 올라가’ 같은 노래를 듣고 있으니 그 시절 풍경이 떠올랐다. 별명이 ‘오다리’였던 친구가 교실에서 이들의 노래를 부르며 개다리춤을 추던 모습과 그걸 본 선생님이 그 친구의 귀를 잡아당기던 순간이 손에 잡힐 듯했다.



가사들은 덜 여문 감성을 얼마나 간질였던가. “산꼭대기 올라가 / 하늘을 보고 구름을 보고 / …. / 더 오를 곳이 없으니 / 더 이를 곳도 없더라” 하는 ‘산꼭대기 올라가’의 가사에서 무상(無想)의 경지를 맛본 듯 착각도 했었다.

대중음악을 한낱 ‘딴따라’로만 폄하할 수 없는 것은 수많은 사람이 제각기 다른 유행가에서 기쁨과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날 어느 순간에 들었던 한 소절은 그 개인사에 완전히 복속되어 뇌 기능이 멈출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하는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특히 좋은 노랫말을 쓴 작사가들에게 늘 감사할 일이다. 한대수는 스물여섯 살에 발표한 노래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 이겨 춤을 추겠네 /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라고 했다. 이장희가 스물여섯 살에 부른 노래 ‘그건 너’의 2절은 작가 최인호가 썼다. “전화를 걸려고 동전 바꿨네 / 종일토록 번호판과 씨름했었네 / 그러다가 당신이 받으면 끊었네 / 웬일인지 바보처럼 울고 말았네.” 이보다 더 회화적인 사랑 노래가 있을까.

대중음악에서 노랫말이 사라진 것은 1990년대 중반 이른바 댄스그룹이 출현한 이후다. 노랫말의 황폐화는 그 이후로 점점 더 빨라지고 심해졌다.


좋은 노랫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으로 밀려났을 뿐이다. 노랫말로 문학상을 준다면 첫 번째로 받을 것이 분명한 조윤석의 노랫말들이 그렇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 튼튼한 지느러미로 /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치네 / … / 나를 고를 때면 / 내 눈을 바라봐줘요 /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고등어’란 제목의 이 노래는 차라리 시(詩)다.

TV에서 볼 수 없을 뿐 젊은 뮤지션들은 여전히 서울 홍대 앞에서 가슴 뭉클한 가사를 써서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다. 스물여덟 동갑내기 김윤주·박세진으로 이뤄진 ‘옥상달빛’의 노래 ‘없는 게 메리트’를 들어보면, 20대가 변함없이 치열하고 씩씩한 것 같아 기분마저 좋아진다.

“없는 게 메리트라네 난 / 있는 게 젊음이라네 난 / 두 팔을 벌려 세상을 다 껴안고 / 난 달려갈거야 / 나는 가진 게 없어 / 손해볼 게 없다네 난 / … / 주머니 속의 용기(勇氣)를 꺼내보고 / 오늘도 웃는다….”

글·한현우 (조선일보 기획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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