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부대찌개는 광복 후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햄과 소시지를 이용해서 만든 음식이다. 의정부나 동두천 부대찌개가 매우 유명해서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있는 식당들도 ‘의정부부대찌개’나 ‘동두천부대찌개’란 간판을 단 곳이 대부분이다.
일산 산들마을에 살 때, 아파트 단지 앞에 부대찌개 집이 있었는데, 간판이 좀 묘했다. 흔히 ‘찌개’를 ‘찌게’로 잘못 적는 경우가 있는데, 이 집은 앞쪽 간판에는 ‘부대찌개’, 뒤쪽 간판에는 ‘부대찌게’라고 적혀 있었다. 우연히 두 개의 표기가 함께 걸린 걸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아저씨랑 아줌마가 서로 내가 맞다고 우기다가 합의를 보지 못하고 둘 다 써서 건 걸까? 아니야, 어쩌면 이 집은 이중 영업을 하는지도 몰라. 앞으로 들어가는 손님에게는 부대찌 ‘개’를 팔고, 옆으로 들어가는 손님에게는 부대찌 ‘게’를 파는 거 아닐까? 만일 ‘개’가 멍멍 짖는 그 개라면 잘 보고 들어가야겠는걸!’
우스갯소리로 들리시겠지만, 서울에도 비슷한 간판이 있었다. 이 집은 그러니까 옛날식으로 말하면 동네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다.
그런데 언제부터 구멍가게라는 단어가 우리입에서 사라지게 된 걸까? ‘구멍가게가 정감 있고 좋은데!’ 아마도 슈퍼 때문일 것이다. 영어만 좀 쓰면 있어 보이는 걸로 착각하는 이들이 조그만 가게에마저 ‘슈퍼’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슈퍼 역시 ‘찌개’ 못지않게 헷갈린다는 것이다. 길거리를 가다 보면 어떤 집은 ‘슈퍼’란 간판을 달고 있고, 어떤 집은 ‘수퍼’란 간판을 달고 있다. ‘수퍼’ 아래 빨간 줄이 나오는 걸 보면 ‘수퍼’는 틀린 표기, ‘슈퍼’가 맞은 표기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거리에는 ‘수퍼’가 더 많고 사람들 발음하는 소리를 들어봐도 ‘수퍼’ 쪽이 더 많다.
그 집 간판은 앞쪽은 ‘○○수퍼’, 옆쪽은 ‘○○슈퍼’다. 어떤 사람들은 슈퍼, 어떤 사람들은 수퍼라고 하니 그 가게 주인장께서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둘 다 거셨는지도 모른다. 그렇잖은가?
가게에서 무슨 이중 영업 할 일도 없고, 단지 슈퍼 찾는 손님이나, 수퍼 찾는 손님이나 모두 놓칠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 얘기 꺼낸 김에 하나만 더 지적하자. 다름 아닌 ‘센타’다. 이것도 올바른 표기는 ‘센터’다. 그렇지만 카센타, 스포츠센타, 심부름센타, 상담센타, 관광센타 등등 온갖 센타가 즐비하다. 동네에 하나씩 있는 동주민센터가 올바른 표기를 모범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하튼 무심해도 너무 무심하다. ‘찌개’든 ‘찌게’든, ‘슈퍼’든 ‘수퍼’든, ‘센터’든 ‘센타’든, 표기가 어떻게 됐든 관심이 없다. 밥만 먹으면 되고, 과자만 사면 되고, 차만 고치면 된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밥만 먹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요즘 경기 어렵고, 사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배부른 소리 한다는 핀잔을 들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하자. 먹고살기 힘들어도 글자 하나 똑바로 쓰는 건 할 수 있다.
글·정재환 (방송인·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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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