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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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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골짜기 폐교된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설무대가 생겼습니다. 무대 앞에는 멍석이 주욱~ 깔립니다. 그 옛날 가을운동회처럼 쾌청한 하늘에 만국기도 몇 줄 띄워놓았습니다. 펄럭이는 만국기 아래로, 마치 세계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대통령들처럼 몸단장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젊었을 때 입던 옷인지 어깨가 헐렁해진 양복에 야구모자를 쓴 할아버지들, 아껴두었던 반짝이 티셔츠에 새 가방을 들고 오신 할머니들, 비록 머리에 물 칠을 하고 손가락으로 쓱쓱 빗어 넘겼지만, 오늘은 음악회에 오시느라 분단장도 조금씩 하신 듯합니다. 아랫마을에 있는 왕산초등학교 전교생 10명도 재잘거리며 도착하고, 왕산중학교 전교생 21명도 속속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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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무대는 비어 있지만, 벌써 관람석에는 인생극장의 관록 있는 배우 같은 산골 마을 사람들이 가득 모였습니다. 도토리같이 까무잡잡한 어린이들이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우리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음악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강릉문화원이 주최하고 도시의 젊은 음악가들이 문화 소외지역 주민을 위해 연주합니다.

상당수 어르신은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악기는 본 적도 없고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미로운 현악 4중주를 감상하느라 세월도 잠시 멈춘 듯 객석이 조용했습니다.

난생처음 음악회에 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 신고 오신 신발을 멍석 바깥쪽에 가지런히 벗어놓고 앉았습니다. 그 신발들에는 긴 인생을 걸어온 고단함이 진흙처럼 달라붙어 있습니다. 농사일만 하시느라 쇠스랑처럼 딱딱하게 구부러진 손으로 손뼉을 치는 모습이 오히려 자신들이 살아온 일생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듯하여, 카메라를 든 나의 가슴 한구석이 찡~ 하였습니다.

도시에서는 흔하디흔한 문화들, 각종 전시회, 연극공연, 뮤지컬, 콘서트, 명칭도 가지가지이지만 산골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는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음악회입니다.

92세 장씨 할머니와 초등학교 1학년 나연이까지 80여 년간의 나이 차이가 나는 관객들이 함께 즐기고 소통하는 작은 음악회였습니다. 연주는 예정보다 훨씬 늦게 끝났습니다. 예정에 없던 마당놀이가 즉석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나도 카메라를 내팽개치고 함께 어우러져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어깨춤은 기본이고 요즘 유행하는 말춤까지 추며 흥겹게 놀았습니다. 마치, 잘 차린 문화를 한 상 가득 대접받은 듯 산골 마을 사람들이 행복해졌습니다.

조금만 따뜻한 시선으로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 문화 소외지역이 예상 외로 많습니다. 10월은 문화의 달, 전국은 지금 각종 공연과 축제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가는 ‘문화’가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글·유금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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