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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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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까지 성행한 리어카상의 음악테이프는 전체 음악매출의 2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시장이 컸다. 정품 아닌 불법 음반을 파는 리어카상을 가리켜 사람들은 ‘길보드’라고 했다. 비록 불법이기는 하나 미국의 빌보드처럼 정확히 가요의 순위를 포착한다 해서 ‘길가의 빌보드’로 일컬은 것이다. 빌보드는 어떤 곡과 앨범의 대중적 인기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집계하는 것을 비롯해 음악의 동향을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절대적 바로미터로 통했다.

팝을 열심히 들었던 시절에 빌보드는 음악인구가 섬겼던 신주단지와도 같았다. 음악깨나 안다는 훈장을 달려면 적어도 빌보드 차트의 1위부터 10위까지는 달달 외워야 했다. 마니아들이 벌이는 음악 배틀은 거의 빌보드가 기준이었다. 하지만 빌보드는 외경(畏敬)이라고 할 만큼 우리 음악에는 먼 존재였다. 한국 음악계의 가장 오래된 푸념은 “우리에게는 빌보드와 그래미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악 관계자들은 농으로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내가 죽기 전에 우리 대중가요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오르는 일을 볼 수 있을까?”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또 어김없이 헛된 몽상이라고 핀잔을 준다. “아마 우리 손자손녀 세대에서나 가능한 일일 거요!”, “하긴 그렇지. 막강한 일본도 안되는데 우리 노래가 빌보드 차트에 등장할 리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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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패감과도 같은 이러한 분위기가 최근 한국의 특전이라고 할 ‘광(狂)스피드’에 가히 소멸 직전에 있다. 뒤 세대는커녕 바로 지금, 한국 대중음악의 빌보드 차트 상륙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김범수가, 스카 뮤지션 ‘스컬’이, 그리고 보아와 원더걸스가 음악흥행의 절대 지표라고 할 빌보드 차트에 명함을 내밀었다. 특히 보아와 원더걸스가 등장한 곳은 우리가 그토록 오래 간망해 오던 빌보드의 앨범차트, 그리고 ‘핫 100’이라는 이름의 싱글 차트였다.

원더걸스의 ‘Nobody(노바디)’는 2009년 싱글 차트 76위에 올랐다.

그 사이 한국 대중음악은 K팝이라는 조금은 국제적인 느낌의 어휘로 바뀌어 세계 음악인구와 친밀해졌지만 ‘노바디’ 이후 그 눈부신 성장세가 빌보드 차트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3년 후인 지금 빌보드에 K팝의 매머드급의 가공할 돌풍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이 곡은 1백위까지 순위를 매기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 64위로 데뷔해 9월 29일 차트에서는 무려 53계단이나 점프해 11위를 기록했다.

물론 휘트니 휴스턴이나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와 같은 톱월드스타는 첫 주에 1위로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아시아권 가수에게 그런 ‘핫 샷 데뷔’는 꿈같은 일이다.

빌보드는 타국에 대한 배타적 태도로 악명이 높다. 심지어 때로는 형제국가인 영국의 가수들도 무시한다. 일본은 1963년 큐 사카모토의 노래 ‘스키야키(Sukiyaki)’가 빌보드 1위에 올랐지만 이것은 당시 고조된 일본의 반미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일종의 유화책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스키야키’는 사랑의 노래였지만 일본어가 생경한 서구인에게 그나마 친숙한 일본음식을 갖다 붙이는 촌극을 남겼다.

그 뒤 여성 듀오 ‘핑크 레이디’의 ‘키스 인 더 다크’가 1979년 빌보드 37위에 오른 게 일본 빌보드 싱글차트 상륙의 마지막이었다.

‘강남스타일’은 지금의 상승속도라면 톱10은 물론, 나아가 1위도 결코 불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 역사의 신기원이요, 건국 이래 최대의 문화적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상황으로도 K팝이 아시아 음악의 선두임은 명백해졌다. 지속적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한 끝에 따낸 결실이다. 요원하기만 했던 미국 음악시장이 손에 잡히는, 믿지 못할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싸이가, K팝이 자랑스럽다.

글·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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