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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배 안 고프다고 ‘사랑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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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사무실 근처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사실은, 양념을 하지 않은 하얀 순두부를 먹고 싶었는데, 차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그냥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중국집으로 슥 들어간 거다.

토요일 오후에 혼자서 먹는 점심은 항상 이런 식이다. 밥 한 끼 먹는 것도 다 사람 관계이고, 나무에 매달린 꽃과 잎이 어울리듯, 우리들 관계 중에서 가장 친밀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식구가 서로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거리는 건강한 생명의 거리이다. 때가 되어 밥을 먹는 풍경은 경건하고 아름답다. 그 거리가 무너지면 위험하고 불길한 시대가 된다.

그날 허기나 달래기 위해 오후 3시경에 중국집에 들어가니, 손님이라곤 나와 가족으로 보이는 4명의 여자가 있었다. 엄마와 세 딸이다. 막내는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방실방실 웃는 모습이 귀엽다.

첫째는 고등학생인 거 같은데 얌전하다. 그런데 둘째는 아마도 ‘중딩(중학생)’인가 싶다. 계속 문자메시지인지 카카오톡인지를 하면서 고개를 스마트폰의 작은 액정화면에 기어 들어갈 듯 하고 있었다. 음식이 나와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엄마가 인상을 쓰면서 ‘밥 먹어’라고 하자, 그 아이는 고개를 들고는 ‘배 안 고프다고!’ 한다. 중딩들의 저 독특한 억양, 우리말의 억양과 띄어 읽기를 무시한 그 이상하고도 도전적인 한마디가 조용한 중국집에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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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두 딸은 짬뽕을 먹고 있다. 마치 자신은 식구가 아니라는걸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것인지, 그 중딩은 내가 짜장면을 다 먹을 때까지 젓가락도 들지 않는다.

짜장면을 다 먹고 나오면서 그 가족을 다시 보았다. 막내와 첫째는, 그리고 엄마는 음식 그릇을 거의 다 비우고 있다. 속이 상한 엄마의 인상이 구겨져 있다. 저렇게 식사를 하면 병에 걸린 텐데 라는 걱정이 들었다. 계속 액정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저 녀석, 꿀밤을 한 대 먹이고 싶다. 엄마는 이제 포기를 한 것 같다.

면에 짜장이 부어진 채 짜장면은 그대로 있었다. 아이고, 아까워라. 내가 대신 먹어 줄 수도 없고, 저 짜장면 한 그릇이 얼마나 대단한 음식인지 아는 사람은 잘 아는데, 저걸 어쩌나….

배/ 안/ 고/ 프/ 다/ 고.

그날 내가 쓴 시다. 제목은 <21세기 스티브 잡스가 떠나간 자리에서 부르는 엘레지>이다. 나는 정말 배가 고프다. 뭔가 갈증이 난다. 배가 고파야 뭔가를 하는데, 계속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하는 한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핵가족에서 더 쪼개질 어떤 가족이 있나 하는 생각도 한다. 아이의 모습은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다. 사춘기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은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인간 성장기의 한 모습일 뿐이다. `

그러나 나는 그날, 식구들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보았던 거다.

성폭력을 비롯해서 점점 흉포해지는 범죄와 빈부격차, 인종주의적인 타인에 대한 적대감. 우리 사회가 지금 자꾸 서로서로를 멀리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정신이 지금 저 식어빠진 짜장면처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가 나무젓가락을 들고 짜장면을 맛있게 먹을 시간을 기다린다. 다음 주 토요일은 좋아지겠지하면서.

글·원재훈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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