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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대형할인점의 푸드 코트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에도 꽤나 혼잡했다.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주문을 하고 있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할인 행사를 알리는 방송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 데다 사람들의 말소리며 주문 음식이 나왔음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 등 갖가지 소음이 뒤섞여 어지간히 시끄러운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수기가 있는 쪽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나 가족 중 아이가 있는 사람 모두의 주의를 끌었을 뿐 아니라 어린아이와 상관없을 법한 사람들마저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아이의 소리가 너무 크고 절박하고 절규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어서였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아이는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모와 물건이 잔뜩 담긴 카트, 카트에 올려 앉혀진 다른 아이와 함께 있었다. 대여섯 살쯤 된 아이는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제 어머니의 다리를 붙든 채 외치고 있었다.

“엄마, 안아 주세요! 안아 주세요! 안아 주세요!”

어머니가 외면한 채 들은 척도 하지 않자 아이는 제 아버지의 발치에 누워 뒹굴기 시작했다.

“아빠, 안아 주세요! 안아 주세요! 안아 줘요!”

카트 위 작은 의자에 올려진 서너살 된 아이는 무관심하게 손에 든 과자봉지에서 과자를 꺼내 먹고 있었다. 짐작하기에 안아 달라고 외치는 아이가 과자봉지를 든 동생을 괴롭혔고 부모가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카트 위 의자에 올려 앉힌 뒤부터 떼를 쓰기 시작한 것 같았다. 아이는 제 동생의 과자를 나눠 달라고도 해 보고 자신도 카트 위에 올라가고 싶다고도 했을 것이고 무엇인가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도 했을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혼내고 교육하는 방식으로 아이의 언행을 일절 무시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하기로 한 듯했다. 그러자 아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과 함께 가장 절실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도 존댓말로.


아이의 “안아 주세요!”는 배가 고파서도 아니고 춥거나 더워서도 아니며 잠을 못 자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내게 관심을 가지고 나를 방치하지 말며 사랑해 달라”는 것이다. 게다가 “안아 줘!”도 아닌 “안아 주세요!”라는 존댓말은 부모가 아이를 평소에 예의바르게 키우기로 노력한 흔적이든지, 아이가 부모에게 좀 더 좋아할 만한 방식의 언어를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 존댓말이 어쩐지 내 가슴을 찌르르하게 만들었다. 번갈아 외치는 엄마와 아빠의 호칭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부모는 사람들의 눈길을 견디지 못하고 억지로 아이를 끌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아이는 땅바닥에 발을 끌며 따라가면서도 안아 달라고 외쳤다.

그 뒤로도 가끔 그 아이의 외침을 떠올리게 될 때가 있다. 추운 날 길거리를 방황하는 헐벗은 사람들,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를 입고 망연자실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무엇인가 마음속으로 절실하게 외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아주 친한 사이에 혹은 연세 많은 정다운 어른과 악수를 하거나 말로 표현해도 될 것을 껴안고 인사를 하는 경우가 더 많이 생겼다. 의례적인 인사를 할 때보다 가슴이 훨씬 더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진작에 이렇게 할 것을, 건강에도 아주 좋겠는데’ 하고 생각한다.

글·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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