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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소통 칼럼 강지원의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설이다. 설을 맞이하는 마음은 늘 설렌다. 올해는 좀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꼭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렇게 시작한 새해가 1년 후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채로 세월은 간다. 무섭게, 어김없이 시간은 간다.

지금의 어려움은 조금 나아질까. 지금의 ‘누림’은 계속 지속될까. 희망을 찾는 밑바닥에는 고통과 불안이 깔려 있다.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희망을 찾는다. 그런데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낙관하고 긍정하는 데서 온다.

그렇다면 낙관과 긍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냥 그렇게 마음만 먹으면 따라오는가. <시크릿>(폴 해링턴 작)의 비밀처럼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아니하다. 아무리 마음먹으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2005년 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각계 인사들의 ‘회초리 들기’ 퍼포먼스가 있었다. 회초리를 들고 후려치는 대상은 타인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종아리였다. 당시 학술원 회장이던 고 김태길 교수는 아예 멍석을 깔고 무릎을 꿇었다. 당시 동덕여대 총장이던 손봉호 교수도 함께였다. 소복까지 입었다. 석고대죄(席藁待罪)의 뜻이었다. 다른 참석자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유구무언(有口無言)이었다. 대신 한 가지 방(榜)이 내걸렸다.

리본도 달았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딱 한 문장이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스스로의 종아리를 내리쳤을까. 당시 사회를 보던 나는 ‘내 탓’, 그리고 참회, 회개, 반성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나부터’라는 순서도 떠올렸다.

우리는 이따금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지금 가진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원망과 불평과 불만을 쏟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고통과 아픔과 슬픔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새 희망을 찾기 위해 나는 우선 나와 우리가 지금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기로 했다. 나의 건강과 하는 일, 가족의 행복과 성취, 나라의 번영, 이 모든 것이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나와 우리가 지금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참회하고 회개하고 반성하기로 했다. 나의 여러 가지 부족함, 사회의 타락과 쟁투, 나라의 시끄러움, 그 모든 것의 원인이 나와 우리의 ‘내 탓’에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부질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지는 않았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가슴에 못을 박고 눈물나게 한 일은 없었는지…

그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자신에게 매, 회초리를 드는 것이 바로 희망을 찾는 지름길이다. 그것은 한 개인이나 단체나 기업이나 국가나 모두 마찬가지다.

지금 바로 나부터 참회한다면, 새해는 우리를 희망으로 초대해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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