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영합(迎合)이라는 단어는 ‘사사로운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며 좇음’과 ‘서로 뜻이 맞음’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대개의 경우 영합은 전자의 의미로 쓰인다.

‘영합’을 후자의 의미로 본다면 ‘소통’과도 의미가 통한다. 소통은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에 유명 소설가 14명을 릴레이 인터뷰한 적이 있다. 대개 문학상을 받고 문단에서 인정받는 분들이었는데 그중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세 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거의 모든 분이 거론한 단어가 ‘소통과 영합’이었다. 요즘 출판시장이 침체되었다고 하는데 10여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뷰에 응한 소설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작품의 주제를 ‘소통’이라고 했다. “왜 소설이 안 팔리는가”라는 질문에는 대개의 작가가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판매를 위해 대중과 영합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때도 인기가 높았던 이외수 선생에게 “작품이 많이 팔리는 건 대중의 기호에 영합했기 때문인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대중은 좋은 책을 고를 줄 모른다는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학은 내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어서 가슴으로 감동받는다. 대중의 가슴이 천하다는 인식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대중의 기호에 영합한다고 다 잘 팔리는 건 아니다. 아예 대중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작품들도 판매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드라마와 영화는 작품을 만들기 전에 철저한 시장조사를 한다. 대중과의 소통을 지상명제로 삼고 작품을 완성해 시장에 내놓지만 며칠 만에 명암이 갈리고 만다. 최근 대기업이 거액을 들여 제작한 영화가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런가 하면 전혀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던 소품이 성공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그간 흥행과는 무관했던 단편영화와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영화가 큰 성과를 거두는 이변도 일어났다.

좋은 작품이라고 다 각광받는 건 아니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다고 다 좋은 작품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큰 성과를 거둔 작품들을 보면 대중이 선택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체 그게 무엇인지, 지금 수많은 작가와 제작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는 중이다.

대중의 가슴을 아는 것이 영합인지, 소통인지, 그것은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더 이상 대중을 한쪽의 의도대로 끌고 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다양한 수단을 교묘히 이용해 선동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그리고 선한 목적을 추구하되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소비주체인 대중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며 좇을 게 아니라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도록 ‘소통과 영합의 상관관계’를 잘 따져봐야 할 시점이다.

글ㆍ이근미 (소설가)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