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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택시를 탔더니 라디오에서 음악토크쇼가 한창이다. 그 라디오 볼륨이 너무 커서 두 남녀 진행자가 승객을 찜쪄먹고 택시를 날려버릴 기세다. 택시기사의 연배는 귀가 어두워질 만큼 높지는 않아보인다. 2~3분간 견뎌 보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말한다. “소리 좀 줄여 주시겠어요?”

하지만 택시기사는 듣지 못한다. 라디오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혀 버린 것이다. 조금 더 크게 말하자 기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소리를 줄인다. 줄이긴 줄였으되 볼륨 다이얼을 1밀리미터만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린 것 같다. 목적지까지 이 소음을 견디는 방법은 MP3 플레이어를 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수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음악 듣기를 좋아했고 TV보다 오디오를 더 가까이하는 나에게도 음악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곳에서 너무 높은 볼륨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듣지 않을 방도가 없을 때 들어야만 하는 음악은 고통이요 고문이다.

동네에 치킨집 하나가 새로 문을 열면 풍선으로 만든 아치 앞에서 유니폼을 입은 여자들이 대형 앰프로 음악을 틀며 춤을 춘다. 치킨집 주인과 아르바이트하는 여자들만 신나서 들떠 있고, 나머지 모든 주민들이 괴로워한다. 그러나 아무도 이것을 막지 않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트럭을 붙박이로 세워 놓고 불법으로 잡화를 팔던 상인들에게 아예 점포를 내줘 양성화했다. 최근에 휴게소에 들러 보니 이 상인들의 가게는 트럭에서 점포로 바뀌었을 뿐 화장실 가는 길목에서 음악을 펑펑 틀어 대는 것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단체 효도관광 길에서 술 한 잔 걸친 어른들 중에 이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는 이들을 본 적이 있지만 대다수 사람은 종종걸음으로 이 ‘폭력적 음악’을 지나친다.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노래에 관대하다. 모였다 하면 노래 한곡 하는 것이 주요 레크리에이션이다. 공원에 야유회 온 사람들이 대형 앰프로 공원 전체를 장악해도 별로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몇 년 전에는 서울지하철 객차 안에 설치된 TV에서 자막뿐 아니라 소리가 나오게끔 했는데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하철에서 할 일도 없는데 TV나 보고 가면 좋지 뭘” 하는 반응이 많았다.

미국은 공공장소의 소음을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특히 국립공원에서의 소음 규제는 매우 엄격하다. 그랜드캐니언에서 해가 저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관광객들의 말소리 외에는 어떤 인공적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론 공공장소에서도 특정 음악이 어울리는 때와 곳이 있다. 이를테면 월드컵 거리응원전에서 최고 출력으로 틀어 놓은 ‘오 필승코리아’나 크리스마스 시즌에 서울 명동 거리를 떠다니는 캐럴은 사람들의 체온을 0.1도쯤 들뜨게 하는 촉매제다. 매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앞 분수대에서 열리는 음악분수쇼를 보고 불쾌함을 드러낼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日常)의 시간과 장소에서 앰프로 증폭된 음악을 듣는 것은 몹시 괴로운 일이다. 이런 음악을 퇴근길에 만나면 발목에 모래주머니가 달린 듯 갑자기 더 피곤해진다. 우리 모두에게는 음악을 듣지 않을 권리도 있다.

글·한현우 (조선일보 기획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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