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외국어, 발음까지 쏙 빼야 통할까?




본래 외국인이지만 한국에 와서 한국사람으로 사는 이들이 많다. 변호사이며 방송인인 하일씨의 본디 이름은 로버트 할리다.

그는 한국인으로 귀화했고 성마저 바꿨다. 그의 본관이 ‘영도’인 것 처럼 그는 ‘부산말’이 유창하다. 방송 재능이 많기도 하지만, 그가 구사하는 부산 사투리에서 더욱 정겹고 친근한 인상을 받는다.

물론 그의 한국어는 완벽하지 않다. 가끔은 “그라고예 키가 좀 적어예”처럼 ‘작다’를 ‘적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미국식 영어에 부산 사투리가 다소 강하게 뒤엉킨 그런 억양과 악센트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대화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서로 눈높이를 맞춘 일대일 대화가 아니라 다수의 시·청취자를 상대로 하는 대화에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



이다도시씨는 프랑스에서 왔다. 국내 한 대학에서 프랑스어 명강사로 이름을 날리다 방송으로 진출,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미모의 여성으로 떴다. 그녀의 한국어는 어휘가 풍부하고 유창하다. 그와 텔레비전뿐만이 아니라 라디오에서도 반 년쯤 방송을 같이 했지만 역시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라디오라 그랬는지 간혹 잘 못 알아듣겠다는 이들도 있기는 했다. 따지고 보면 그의 한국어는 프랑스제 향수를 잔뜩 뿌린 것 같아, 도저히 순정한 한국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잘 못 알아듣겠다는 청취자의 지적은 바탕에 깔려 있는 프랑스식 억양이나 악센트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그녀의 말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테제베처럼 빨리 말한다.

지금 한국관광공사 사장인 이참씨도 한국어를 참 잘한다. 교육방송에서 <코리아코리아>를 진행할 때 고정 출연자로 일주일에 한번은 꼭 만났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국어를 잘하느냐고 물었더니, “에이 아니에요” 하면서 한국에 와서 한 10년 사니까 그제서야 한국어를 조금 알 것 같더라고 했다. 그런데 그의 한국어는 하일씨나 이다도시씨처럼 거침없이 나오는 한국어는 아니다. 갑갑할 정도로 뜸을 들이지는 않지만 신중하게 또박또박 말한다.

물론 그래도 완벽한 한국어라 하기엔 좀 부족하지 않느냐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참씨의 한국어가 다소 투박한 독일식 억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훌륭한 한국어다.


외국어로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말하고, 강의는 물론이고 방송에서 농담을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다 해도 소리까지 빼다 박기 어렵다는 것을 세 사람의 유창한 한국어에서 느낀다. <미녀들의 수다>에 나왔던 크리스티나, 도미니크, 사유리, 구잘 등등의 외국인들이 모두 비슷하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당신들 발음이 이상해”라고 따지거나 추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입장이 바뀌어 영어만큼은 발음까지도 원어민하고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원어민 강사 초빙에, 수백억대 영어마을 건립에, 조기유학에 혓바닥 수술과 원정 출산에 이르기까지 추호의 주저함도 없는 엽기적 원어음 강박증은 신기하다 못해 기괴하다.

글·정재환 (방송인·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