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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너희 늙어 봤어? 나는 젊어 봤다!”




어디서 읽었던가 들었던가.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너희 늙어 봤어? 나는 젊어 봤다!”고 일갈(一喝)했다고 해서 ‘그것 참 말 된다’고 생각했었다. 젊어 본 사람만이 늙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늙은 사람은 한때 젊었다. 늙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진실을 끝내 실감하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 전체가 모든 이를 젊다고 간주하고 돌아가는 것 같다.

여든을 눈앞에 두신 아버지가 영화 <고지전>을 보고 싶어하셨다. 지난번에 보여드린 영화가 <태극기 휘날리며>였으니 아버지의 영화관 나들이는 무려 7년 만의 일이었다.

아버지와 친구분을 대형 멀티플렉스에 모셔다 드렸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와 영화관이 한건물에 있는 복잡한 곳에서 아무래도 두분이 고생하실 것 같았다. 좌석 배치도를 설명해 드리고 “영화 끝나면 모시러 올 테니 이 매점 앞으로 와서 기다리시라”고 했다.



빳빳하게 다린 모시 셔츠에 양복바지까지 갖춰 입은 두 분이 반바지에 슬리퍼 신은 젊은이들과 함께 영화관 안으로 사라질 때, 나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 딸을 들여보내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 됐다. 주말의 복잡한 영화관 로비에서 두 분을 찾기 어렵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그것은 기우(杞憂)였다. 영화 끝날 시각에 맞춰 영화관 로비에 가 보니, 북적대는 그곳에 두 분만 꼼짝 않고 섬처럼 서 계셨다.

얼굴은 “분명히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하는 표정으로 약간 상기돼 있었다. 그 얼굴은 언젠가 딸과 함께 대형 마트에 갔다가 “금방 올 테니 여기 꼼짝 말고 있어” 하고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 본 딸의 얼굴과 흡사했다.

나는 생각했다. 왜 인생 황혼에 이른 아버지가 아직도 세상에 맞춰 사셔야 하는가. 세상이 아버지 세대에게 더 잘하고 편하게 해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영화관엔 노약자 전용 카운터와 안내원이 있어야 하고, 컴퓨터는 국가에서 미리 가르쳐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좀 다른 경우지만, 이런 일은 공연장에서도 볼 수 있다. 왕년에 유명했던 해외 뮤지션이 한국을 찾아오는 일이 잦아지면서, 장·노년층 관객이 꽤 늘었다. 작년에 온 밥 딜런이나 올해 열린 이글스의 내한 공연이 그랬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의 신사들이 꽤 좋은 승용차를 타고 공연장인 올림픽체조경기장에 도착했다. 이들 상당수가 최고 33만원짜리 VIP 티켓을 사서 모처럼 ‘젊은 날의 우상(偶像)’을 보러 공연장에 왔다.

그런데 난생 처음 온 공연장은 시장바닥과 비슷했다. 하염없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고, 들어가 보니 공연을 기다리며 앉아서 쉬거나 차를 마실 만한 공간이 전무(全無)했다. 화장실마다 20미터씩 줄을 서 있었다. 당시 공연장을 찾았던 이모(62)씨는 “VIP 티켓을 사고도 푸대접받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푸념했다.

영화관이나 공연장은 대개 민간 영역이니, 그들이 주 고객인 젊은 세대 위주로 운영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장·노년층을 문화에서 소외시키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모든 세대가 불편하지 않게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살기 좋은 나라다.

글·한현우 (조선일보 기획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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