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우리 집 강아지 이야기입니다. 산골짜기 허름한 집 마당에, 묶이지도 않고 그저 밥 먹고 똥 싸고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잠자다가, 심심하면 지나가는 흰 구름이나 쳐다보며 멍멍 짖는 그야말로 팔자 편한 개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낮잠 자다가 돼지꿈을 꾸었는지, 벌떡 일어나 냄새를 킁킁 맡으며 나가더니 어디서 큼직한 돼지 뼈다귀를 하나 물고 종종걸음으로 들어왔습니다. 매일 된장국이나 나물밥 찌꺼기를 먹고 살다가 비릿한 뼈다귀를 하나 얻었으니 눈이 휘둥그레질 일이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그날부터 이 개 팔자는 1백80도 달라졌습니다.
시래깃국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고 종일 뼈다귀만 핥아댔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개가 놀러 와도 꼬리를 흔들기는커녕 이빨을 드러내고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거립니다. 안절부절못하고 뼈다귀를 물고 다니며 이 구석 저 구석 땅을 파고 숨겼다가 또 파내서 다른 곳에 묻고 하기를 종일, 그래도 불안한지 이제는 아예 입에 물고 잠을 잡니다.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만 바스락거려도, 화들짝 놀라 뼈다귀를 찾느라 그전처럼 느긋하고 평화롭게 잠들지도 못합니다. 난데없는 횡재인 줄 알았던 돼지 뼈다귀 하나 때문에 개 팔자 상팔자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대관령 산골짜기에 사는 우리 집 영감님은 강릉 시내에 볼일이 있어 갈 때면 무슨 복권이라는 걸 사옵니다. 청년 시절부터 거의 40여 년 동안 해온 습관입니다. 내가 시집올 때, 곧 그림같이 예쁜 집을 지어 주겠다며 지갑 속에서 주택복권 한 장을 꺼내 보여주던 생각이 납니다.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던 나는 이 산골짝 쓰러질 듯한 함석집에서 싸라기 시루떡처럼 희끗희끗하게 늙었습니다.
이제 돌이켜 생각해보면 재미난 추억이 되었지요. 억지로라도 돼지꿈을 꾸겠다며 벽에 걸어 둔 돼지 그림 액자의 금빛 테두리도 우리 부부와 함께 희끗희끗 바랬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도 단 10만 원짜리 복권 한 장 당첨되지 못한, 지지리도 복 없는 우리 집 영감님은 봄이면 어김없이 산비탈 밭을 갈아 감자 심고, 감자꽃 피면 밭둑에 앉아 막걸리 한 잔 먹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철 지난 유행가 한 곡 부르지요. 여름이면 콩 심고, 가을이면 배추 심고, 겨울이 오면 저렇게 아랫목에 뒹굴뒹굴 누워 TV 보다가 낮잠 자다가 합니다.
누가 로또복권이 당첨되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다는 TV 뉴스를 보다 아랫목에 누워 코를 골며 낮잠 자는 우리 집 영감님 모습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지만 돼지 뼈다귀 주워오기 이전 우리 집강아지 잠자는 모습처럼 편안해 보입니다. 벽에 높다랗게 걸어놓은 액자 속 돼지 그림이 날마다 이렇게 사는 우리 부부를 내려다보며 빙긋이 웃고 있습니다.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도 새해를 맞아 희망에 찬 좋은 꿈 많이 꾸십시오. 혹여 돼지꿈은 꾸지 못했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어진 여건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행복이 어쩌면 횡재보다 귀한 것일지 모릅니다.
글·유금옥 (시인)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