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딸의 결혼식이 있었다. 귀한 시간을 내어 결혼식에 참석해 주신 분들에게 인사 편지를 쓰려고 앉았지만, 감사의 마음과 딱 맞는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펜을 쥐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친구 하는 말 “왜 시간 낭비를 하니? 인터넷 검색해 봐. 마음에 드는 인사말 예문을 골라 돈 주고 사면 되는데.” 설마! 하고 검색해 보았더니 이게 무슨 황당한 세상이람? 인사말 카테고리라는 것이 나오고, 청첩장, 주례사, 예단편지, 결혼만이 아니라 심지어 조문 인사, 병문안 인사까지 각종 글귀가 주르륵 나왔다.

마음에 드는 인사말을 골라 얼마간의 돈을 주고 사면 된단다.

마치 슈퍼마켓 시식코너처럼 몇 구절씩 맛보기로 보여주기도 하여 읽어 보니 이럴 수가! 어디선가 들어 본 말, 말들. 사회자의 말이며, 주례사며, 심지어 사위가 보내 온 편지까지 이렇게 비슷하다니.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중에 한가지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진심 어린 말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불행의 늪에 빠진 사람을 스스로 헤쳐 나올 수 있게 하고, 불치의 병도 이기게 하여 주지 않던가? 그런데 그런 덕담과 인사말들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고 사는 세상이라니!

전화기도 없던 시절, 내 어머니는 한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셨다. 그래도 꼭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면 수백 리 밖 친정에 안부편지를 보내곤 하셨는데,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어머니의 편지를 대필해 주곤 하였다.

깨끗하게 닦은 소반을 앞에 놓고, 다른 날보다 단정하신 모습으로 앉아 어린 나보고 받아쓰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편지에 쓸 말을 하시기 전에 하늘을 쳐다보며 고요히 생각에 잠기곤 하셨는데, 고향 집을 떠올리는 듯 친정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 때론 눈시울을 붉히며 때론 목이 잠긴 목소리로 나직나직 말씀하시곤 하였다.

부모님 전상서, 올해도 찾아뵙지 못하고 불효한 여식이 멀리서 인사 올립니다. 아버님, 어머님, 무릎에서 내려놓지 않으시던 셋째딸 절 받으십시오.

편지글을 말씀하실 때 어머니는 영락없이 시인이었던 것. 어쩌면 지금 내가 시인이 된 건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편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음까지 담아서 보내는 것이다.

세수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쓴 편지 한 통, 하얀 종이에 꼭꼭 눌러 쓴 서툰 글씨의 편지 한 통이 문득 그리워지는 연말이다. 올해도 제각기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가까운 사람들과 덕담을 나누고 편지나 카드를 주고받는 연말이 되었다.

조금 서툰 문구라도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담아 편지 한 통 쓰는, 사색에 잠긴 겨울밤은 어떨까? 그런 겨울밤엔 아마, 새하얀 첫눈이 내릴 것 같다.

글·유금옥 (시인)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