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자전거에 새로 취미를 붙이다 보니 자연스레 인터넷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하게 됐다. 혼자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용기를 내 동호회의 주말 라이딩에 나갔다. 브랜드가 같은 자전거를 갖고 있는 사람이 스무 명쯤 모였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남자부터 40대 여자 회원까지 면면이 다양했다.
반포대교 밑에서 팔당댐까지 왕복 70킬로미터 구간을 달리는 코스는 초보자에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라이딩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암사동 근처 언덕길을 ‘끌바’(‘자전거를 끌고 간다’는 뜻의 은어) 없이 타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때때로 시속 30킬로미터 가까이 달리는 선두를 바짝 따라가며 페달질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장 어렵고도 어색했던 것은 나를 닉네임으로 소개하고 다른 사람을 닉네임으로 부르는 일이었다.
내 닉네임은 ‘냉수마찰’이다. 영문으로 된 ID가 있었지만 별명을 따로 지어야 했다. 인터넷 카페에 가입할 때 책상에 놓여 있던 잡지에서 ‘냉수마찰’이란 단어가 눈에 띄기에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써 넣었다.
토요일 오전 10시, 라이딩 출발 지점으로 공지된 장소에 가니 7부 바지를 입고 헬멧을 쓴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치우쌤입니다.” 인터넷 카페에 이날 라이딩을 제안한 사람이었다. 그 옆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닉네임으로 소개했다. 내 소개를 할 차례였다. “저는… 냉수마찰이라고 합니다.” 떨떠름한 소개에 몇 사람이 “아, 마찰님? 처음 나오시는 거죠?” 하고 반색했다. 그들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서로를 닉네임으로 불렀다.
뒤이어 합류한 사람들도 “메탈남입니다” “어어부입니다” 하며 자기를 소개했다. 내가 쭈뼛거리고 있으면 “닉(닉네임)이 뭐예요?” 하고 묻기도 했다. 본명이나 직업, 나이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다른 이들을 닉네임으로 불렀는데, 입에 익숙하지 않아 영 어색했다. 애초 오기로 했던 ‘왕따님’이 사정이 생겨 불참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날 ‘마코마코님’을 선두로, ‘치우쌤님’을 후미로 한 자전거 행렬은 도중에 점심으로 국수를 먹어 가며 라이딩을 무사히 마쳤다. 경력이 쌓인 사람은 초보자를 성의껏 가르쳐 줬고, 공구를 잔뜩 싣고 온 사람은 펑크 난 남의 자전거를 고쳐 주었다. 참가자 중 상당수가 서로 처음 만났는데도 마치 오래 사귄 사람들처럼 다정하고 성실했다. 평소 인터넷에서 서로 닉네임을 부르는 걸 낯간지럽게만 생각했던 내게는 무척 신선한 광경이었다.
매스컴에서 ‘네티즌’은 익명에 숨어 반(反)사회적 행동을 하는 군상(群像)으로 비칠 때가 많다. 하지만 닉네임으로 책을 펴내는 사람이 이미 등장했고, 앞으로 묘비명에 닉네임을 쓰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나는 자전거를 통해 아름다운 닉네임들을 만나게 됐다. 자전거 동호회원 사이에서 ‘뱃사공님’은 자전거를 통해 인생을 관조하는 ‘자전거 철학자’로, ‘징검다리님’은 67세 나이에도 산악자전거로 MTB 대회를 완주하는 정신력으로 이름난 사람이다. 나도 닉네임을 새로 지어야겠다.
글·한현우 (조선일보 기획취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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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