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986년 월드컵 때 한국 선수들이 직접 빨래를 했다는데 사실이냐?”
서울올림픽이 한창이던 1988년 10월. 네덜란드 기자의 취재에 응한 허정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부인하자니 거짓말이요, 긍정하자니 민망한 일 아닌가. 한국의 축구문화가 국제관례와 기준에 한참 뒤처져 있다는 걸 차마 확인해줄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장비담당 인력만 다섯이 넘고, 유니폼에 식재료에 훈련도구에 음료수까지 트럭으로, 비행기로 공수하지만 20년 전만 해도 직접 손빨래에 공에다 바람을 넣는 것도 선수들의 몫이었다.
장비만 문제인 것도 아니었다. 2010년 태극전사들의 최종 스파링 파트너는 FIFA 랭킹 1위 스페인. 한국 축구가 세계 변방을 벗어났다는 뚜렷한 증거다. 1970~80년대만 해도 유럽과 남미의 프로팀들은 오프 시즌에 관광 겸 휴식을 겸해 대한민국을 찾았다. 일본에 들른 길에 짬을 내 ‘후다닥’ 방한하고 우리 대표팀과 경기를 가진 후 연결편 탑승을 위해 그날로 다시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 적도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축구계의 변방이었다. 가난한 나라라 유럽 구단들에게 대전료를 많이 줄 수도 없었지만, 남미와 유럽의 축구 강국 처지에서 보자면 한국은 대전료를 떠나 별다른 매력이 없는 나라였다.
설렁설렁 플레이하는데도 우리 대표팀은 그들을 이기지 못했다. 그것이 유럽 팀들의 다소 느슨한 플레이를 우리가 참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32년 만에 본선 진출권을 획득한 1986년 멕시코월드컵 대회. 대한민국 대표팀의 출정식은 초라했다. 비(非) 아시아권 국가대표팀이 평가전 상대로 섭외 1순위였으나 모두 불발. 유럽과 남미의 프로팀 가운데서도 오려는 팀이 없었다.
그래서 출정식은 마산, 대구, 인천을 돌며 우리 실업선발과 치른 3연전이 대신했다.
1990년엔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 2월엔 유럽과 중동에서 몰타, 노르웨이, 레알 바티스(스페인), 이라크를 상대하고 3월엔 수원과 제주에서 스웨덴의 말뫼, 5월엔 안양과 잠실에서 파라과이의 과라니와 경기를 가졌다.
그 뒤 한국 축구의 위상은 조금씩 높아졌다. 1994년 해외 평가전 상대가 루마니아 대표, 콜롬비아 대표, 미국 대표로 한 단계 격상한 것. 본선 전의 친선경기도 에콰도르, 온두라스 대표 팀과 치를 만큼 한국 축구도 진화를 거듭했다.
1998년에 출국 직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황선홍이 상대 골키퍼와 부딪친 뒤 그 후유증으로 월드컵 본선에서 단 1분도 뛰어보지 못한 건 유명한 이야기. 회상이 여기에 이르면 가슴이 아파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 황선홍!
그 무수한 시행착오와 인내의 결과가 이번 월드컵의 16강 진출이 아닐까. 첫 경기 그리스 전. 잘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우리가 이 정도로 성장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상징한다는 푸른 빛깔의 그리스 유니폼. 태극전사들이 전진해나가자 그리스 선수들은 섬이 됐다.
외부와 고립된 채, 폭풍우 몰아치는 밤바다에 연락두절의 상태로 그저 외로이 떠 있는 한 조각의 섬. 그 섬 사이사이를 충무공이 지휘하는 우리 함대와 철갑 거북선이 유유히 항해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앞바다에서 숨을 죽였지만 아프리카를 가로질러 ‘16강 항구’에 도달했다.
국민소득 1천5백 달러인 나라가 하루아침에 3만 달러 선진국으로 도약할 길은 없는 법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1954년 첫 출전, 무득점 16실점으로 무너진 이후 56년 동안 무수하게 얻어맞고 비틀거리고 허덕허덕 버텨온 세월이 바로 우리의 자산이요 경험이며 역사다. 
상대 공격수가 설렁설렁 움직이는데도 우리 수비수가 90분 내내 허덕거리며 따라붙어야 하는 서러운 시절의 패전과 아픔이라는 경험이 없었다면, 그 세월을 견뎌온 끈기가 없었다면, 무수한 실패를 끝끝내 극복하고 백 리 길을 완주한 저력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축구가 16강에 오르기는 쉽지 않았을 터이다.
그리스가 2004년 유럽 챔피언의 보위에 오른 것은 엄청난 성취지만, 월드컵은 다른 무대다. 마찬가지로, 월드컵 본선과 16강 진출은 격이 다른 성취다. 선배들 덕분에, 우리는 ‘월드컵의 중압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서 자유롭게 상대 문전을 휘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함장 허정무 감독은 섬에서 태어난 바다 사나이다. 명견 진돗개와 강강술래와 우리 소리의 원형(原形) 다시래기의 발상지, 바다와 문명이 어우러진 남도의 보석 진도. 미당 서정주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고 했다. 허정무의 ‘8할’은 진돗개의 근성과 강강술래의 공동체정신과 다시래기의 신명이다.
공동체정신과 신명으로 뭉친 대한민국 축구가 세계를 호령했으니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이 화답할 차례다.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자, 승리의 함성 하나 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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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