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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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지리산의 황금빛 가을 들녘은 지금 농부들의 막바지 수확의 손길로 분주하다. 설악산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는 단풍의 기운이 지리산 주능선을 맴돌다 마침내 뒷마당 감나무까지 도달하기 전에, 그리고 서리가 내리고 첫눈이 오기 전에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 단풍 구경에 들뜨는 시절이지만 농부들은 물드는 단풍잎을 바라보며 한 해를 점검하고 반성하며 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결실의 성과가 좋든 말든, 돈이 되든 말든 농부들은 이 청청한 가을 하늘 아래 온몸이 검붉게 타오르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단풍나무며 붉나무며 온 산을 물들이는 노랗고 붉은 기운에 넋을 빼앗기지만, 사실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단풍의 기운은 황금빛 들녘이요, 나뭇가지마다 노랗게 물든 감이며 붉디붉은 홍시 아닌가? 아니, 그보다 아름다운 단풍은 자신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일용할 양식을 꿈꾸며 온몸을 던지는 농부들의 구릿빛 근육 아닌가? 아무래도 단풍은 설악산에서부터 백두대간을 타고 남하하는 것이 아니라 농부들의 검붉은 얼굴과 구릿빛 근육이 세상의 단풍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단절의 목숨을 연명한다. 계절 또한 그렇게 꽃철이면 꽃들에만 마음을 주고, 여름 휴가철이면 바다와 계곡에, 단풍철이면 단풍에만 마음을 빼앗기며 허둥댄다. 그러나 농부들은 단절의 시간을 모른다. 봄에 여름을 생각하고, 여름에 가을을, 가을에 겨울을, 겨울에 봄을 미리 온몸으로 생각하고 실천한다.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봄에 가을을, 가을에 봄을 미리 사는 것이다. 아무리 못난 농부일지라도 생명 그 자체는 단절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며 사는 것이다.
구례 들녘에는 벼 수확을 하기 전에 미리 내년 봄에 피어날 자운영 꽃씨를 뿌린다. 천연비료인 자운영을 먼저 흩뿌린 뒤에야 벼 수확을 시작하는 것이다. 눈앞의 수확에 눈이 멀지 않고, 그 꽃들이 마침내 내년의 어린 모들을 살찌게 키우리라는 부푼 마음으로 올해의 농사를 마감한다. 그러하니 그 마감은 당연히 또 다른 시작으로 연결돼 있다.
이처럼 풍요한 결실마저 눈앞의 결실만이 아니라 내년 봄과 가을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천하의 대본으로 여겨지던 농사가 요즘에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별로 돈도 되지 않는 농사에도 이러할진대, 우리는 지금 무엇으로 사는가? 목숨을 걸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지만, 진정 실상이 그러한지 반문하고 또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의 기운은 저 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설악산이며 내장산이며 지리산이 아니라 바로 구례 들녘이나 하동군 악양면 무딤이 들녘의 황금빛 물결, 그 물결 속에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함께 사는 농부들의 구릿빛 근육에 있다.
머지않아 저 들녘 위로 볏짚을 태우는 연기가 오르고, 함박눈이 내리고, 배고픈 까마귀떼들이 날아오르리라. 그러나 저 들녘의 흙가슴 속에는 이미 내년 봄의 씨앗들이 꼬물꼬물 싹을 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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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