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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제54호>제발 성실한 사람들의 한해가 되길…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돼지한테는 몹시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돼지하면 미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렸을 때 돼지한테 구정물을 주다가 물린 적이 있는데, 그 원한 때문만은 아니다. 돼지에 대한 종합적인 인상과 관념이 ‘돼지는 미련하다’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박히게 만들었다. 돼지가 자못 똑똑한 동물에 속한다는 연구 결과를 접하고도, 한 번 자리 잡은 이 같은 이미지는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스물다섯 살 때, 나야말로 참으로 돼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돼지 녀석아, 정신 안 차릴래. 하필 스물다섯에 그런 대오각성을 했느냐 하면, 그 해도 돼지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열두 해 전 그때의 새해 바람은 오로지 하나, 소설가로 데뷔하는 것이었다.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그 이후로 몇 해 동안 미련하게 소설만 썼고, 소설가로 데뷔한 다음에는 소설가로 존재하기 위해서 미련하게 소설만 썼다. 정신차려보니 다시 돼지해다. 12년이 훌러덩 지나고 서른일곱 살이 된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새해 바람을 아주 솔직하게,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내가 이미 냈거나 낼 책이 보다 많은 독자와 만나는 것(좀 팔렸으면 싶다는 거다), 나의 투철한 직업정신에 의해 탄생한 작품들이 평자들의 마음에도 들어 상찬을 받고 나아가 그 상징적인 결과로 문학상이라도 하나 받는 것일 테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바람을 얘기하자면 일거리가(원고 청탁이) 꾸준히 들어와 주고, 한두 권의 책을 출판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아가 그 책을 보게 될 소수의 독자에게 의미 있는 독서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간단히 말해서 소설가로 직업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토록 사적으로 이기적인 바람을 가진 자가 대의적인 바람을 말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겠지만 내 개인적 직업과 연계되는 바인지라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공공선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제고되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1980년대까지는 그 어떤 사고의 소유자든 전체주의적인 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부터 이제까지는, 반대로 너무나도 개인주의적인 틀에만 매달려왔다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 사회를 불안케 하는 대내외 요인과 함께 남을 생각하지 않는 개인주의가 점점 만연하고 있다. 실제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젊은이들이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이젠 보기 힘들 정도다. 이 모든 현상은 결국 우리 사회에 공공선이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나는 돼지처럼 미련하게 쓰느라 내가 무슨 주제로 쓰고 있는지도 몰랐다. 최근에야 어렴풋이 알겠다. 내가 쓴 주제는, 돼지처럼 미련하다는 오해를 받아(자신보다는 공공선을 먼저 생각하기에) 가면서도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이었던 듯싶다. 참말이지 올해는 개인적일지언정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성실한 생활인들이 사는 보람과 기쁨을 만끽하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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