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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중남미순방,'호흡'도 '세일즈'도 숨 가빴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가장 긴 순방이었다. 9박 12일. 콜롬비아, 페루, 칠레, 브라질을 오가는 비행시간만 52시간 25분이었다. 4만3000여㎞에 달하는 여정을 소화하기 위해 꼬박 이틀하고도 4시간 더 비행기를 탄 셈이다. 게다가 밤낮이 완전히 뒤바뀐 환경 속에서 공식 일정을 수행한다는 건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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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4월 27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영접 나온 인사들과 인사하고 있다

 

여기에 또 다른 복병이 있었다. 바로 첫 방문국인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낯선 환경이었다. 보고타는 해발 2650m에 위치해 있다. 백두산 정상(2750m)과 맞먹는 높이다. 산소가 부족해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숨이 가빠진다. 보고타에 도착하자 현지 안내원은 기자들에게 "뛰지 말라"는 말부터 했다. 고산병에 대비해 비상약도 지급됐다. 급기야 프레스센터에는 산소통 2개를 가져다놓기도 했다.

일부 기자들은 도착 직후 눈이 붓거나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지만 필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보고타 주요 관광명소 중 하나인 몬세라테 성당에 오르자 비로소 산소 부족을 실감했다. 해발 3160m에 있는 몬세라테 성당은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보고타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지만 오래 머물긴 힘들었다.

 

비행시간 52시간 25분, 4만3000여㎞ 여정

박 대통령 콜롬비아에서부터 이상신호

박근혜 대통령도 첫 방문지인 콜롬비아에서부터 건강에 이상신호가 왔다. 박 대통령은 4월 18일(현지 시간) 동포간담회에서 동석한 수행원들에게 "고산병을 느끼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목으로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휴식이 필요했지만 순방 일정을 임의로 변경할 수는 없었다.

결국 박 대통령은 귀국 직후 건강검진에서 위경련과 인두염 진단을 받았다. 과로에 따른 만성피로가 원인이었다. 해외 순방 중 박 대통령의 건강이 나빠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몸살 증세로 이틀간 일부 공식 일정에 불참했다. 같은 해 9월 캐나다와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링거를 맞아야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의료진이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권고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 순방이 유난히 힘들었던 것은 장거리 비행과 시차 탓만은 아니다. 당초 중남미 순방은 3개국만 방문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콜롬비아가 박 대통령의 방문을 간곡히 희망하면서 순방 직전에 일정이 바뀌었다. 통상 1년 전부터 준비하는 순방 일정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결국 콜롬비아 방문이 추가되면서 출국일은 당초 4월 18일에서 16일로 이틀 당겨졌다.

4월 16일은 세월호 사고 1주기다. 청와대는 고심 끝에 세월호 1주기 일정을 진행한 뒤 그날 오후 출국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 수사까지 맞물렸다. 16일 당일 박 대통령은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가 다시 청와대로 올라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만난 뒤 오후 늦게 출국하는 등 순방을 시작하기 전부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어진 일정은 '세일즈 외교'로 숨 가쁘게 돌아갔다. 순방에 동행한 경제사절단 참여 회사만 125개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지금까지는 115개 사가 참여한 지난 3월 중동 순방이 최대 규모였다. 중동에 이어 중남미에서 다시 한 번 신(新)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한국의 세일즈 외교에 해당국 정상들도 적극 화답했다. 현지 기업인들을 만나는 비즈니스 포럼에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과 오얀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한국과의 경제협력 의지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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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이 4월 22일 칠레 산티아고 대통령궁 앞 헌법광장과 궁내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4개국과 맺은 78건의 MOU

'21세기 대한민국 상단(商團)'

4개국과 맺은 양해각서(MOU)만 78건에 달했다. 이 역시 순방 성과로 역대 최대 규모다. MOU 체결 숫자가 직접적 성과는 아닐 수 있지만 향후 양국 간 협력사업이 그만큼 풍성해졌다는 의미다. 이는 중남미 국가들이 한국을 국가 발전 모델로 삼고 있다는 방증이다. 콜롬비아 산토스 대통령은 박 대통령을 만나 "한국의 교육 수준을 닮고 싶은 것이 나의 꿈이다. 한국의 교육 전문가를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제협력을 넘어 한국을 국가혁신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남미는 한국의 정반대편에 있다. 박 대통령은 "한국에서 그대로 지구 반대로 관통하면 브라질이 나온다"고 했을 정도다.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는 게 경제협력의 최대 숙제라는 얘기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이번 순방 기간 중남미 유통기업들과 전자상거래 분야 MOU를 맺는 데 각별히 공을 들였다. 한국 중소기업들의 판로 개척을 위해서다. 실제 중남미 최대 유통기업인 엑시토(Exito)를 포함해 브라질 1위 홈쇼핑업체 폴리숍(Polishop) 등 다수의 유통기업과 전자상거래의 물꼬를 텄다.

안종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1 대 1 비즈니스 상담회의 성과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는 게 그의 평가다. 1 대 1 비즈니스 상담회는 3월 중동 순방 때 처음 도입됐다. 해당국 기업과 한국 기업 간 1 대 1 상담을 주선해 즉석에서 계약을 따내는 것으로 안 수석은 이를 "21세기 대한민국 상단(商團)"이라고 했다.

물처리 엔지니어링 기업인 '부강테크' 관계자는 "누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중소기업을 신뢰하겠느냐. 하지만 정상과 동행하니 (해당국 기업의) 신뢰를 얻기가 수월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에 외교사절단을 따라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장사를 한 상단과 1 대 1 상담회가 유사하다는 얘기다. 중남미 상담회에는 한국 기업 76개사, 남미 기업 497개사가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였다. 즉석에서 맺은 계약은 72건, 6억4600만 달러(약 7000억 원)에 달했다.

청와대는 중남미 순방의 성과가 국내 현안에 묻혀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데 대해 안타까움이 크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매일 주사와 링거를 맞으며 강행군한 끝에 얻어낸 성과가 아닌가. 전자상거래와 1 대 1 비즈니스 상담회 등을 통해 얻는 성과를 바탕으로 기업들이 중남미 시장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될 때 박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 성과도 재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 이재명 (동아일보 기자) 20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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