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찬란한 신라의 고도이자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경주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다. 오랜 유적지의 역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욕심을 내 더 깊은 고향의 향수에 젖고 싶다면 어디를 찾아가야 할까. 유명 관광지를 둘러본 후 전통시장에 들러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5월 29일 목요일 경주의 명승지 불국사 방향 반대편으로 꽤나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향한다. 골목에 들어서면 알록달록 파라솔들 사이로 도넛 굽는 구수한 냄새와 싱싱한 과일, 나물 향이 뒤섞여 있다. 저 멀리 안쪽에서 익숙한 뽕짝이 들리고 꽃무늬 몸뻬들이 바람에 펄럭인다. 파릇파릇한 텃밭의 모종들이 바닥에 늘어져 있고 어르신들은 가벼운 수레를 하나씩 끌고 느릿한 걸음으로 휘휘 둘러본다.

경북 경주 구정동에 위치한 불국사공설시장 풍경이다. 조선 후기부터 지금의 불국사역 앞에 있다가 1965년 자리를 옮긴 불국사공설시장은 4·9·14·19·24·29일에 장이 열린다. 인근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부터 특용작물, 동해에서 직송된 해산물이 거래되고 있다.
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흥미로운 광경들
크지 않은 규모에도 이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건 유명 관광지가 근처에 있어서다. 주변의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존하듯 전통의 모습을 오래 간직한 곳이다. 불국사공설시장은 불국사에서 버스나 승용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다. 남자친구와 함께 서울에서 여행을 왔다는 김가영(24) 씨는 “근처 불국사와 석굴암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들렀다”며 “경주의 유적지와 함께 색다른 체험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상인들도 오랜 토박이들이다. 씨앗을 파는 이순자(81) 할머니는 장터 상인만 50년이라며 주름진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펼친다. 하루 매상은 많아야 4만원 정도다.
거동도 불편한데 새벽부터 일어나 장터를 지키는 까닭은 ‘습관’이어서다. “나한테는 고향인데, 당연한 거지 뭐.” 그는 뻥튀기 한 줌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오공임(53) 씨는 1년 전 남편과 사별한 이후부터 딸 박옥경(31)씨와 함께 도넛과 분식류를 팔고 있다. “28년간 남편이 해온 일을 멈출 수 없었다”며 떡볶이를 먹음직스럽게 퍼올렸다. 피자 반판만한 술빵(막걸리빵)은 단돈 2천원이었다.
장터에서는 대형 마트나 일반 슈퍼마켓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알이 유난히 굵고 싱싱한 달걀을 바구니에 담아 파는 채끝복(71) 할머니는 새벽에 60~70판씩을 챙겨 들고 나온다.
30알에 5천원 정도로 저렴하다. 바구니에 담겨 있는 30개의 달걀을 한꺼번에 까만 비닐봉지 속에 쑥 집어넣는데도 한 개도 깨지지 않는다.
생닭의 목을 턱, 턱 치며 가판에 올려두던 아주머니는 “아가씨, 몸보신해야지~” 하면서 허연 속살의 닭을 불쑥 내밀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커피 파는 아주머니는 전동 카트를 움직이며 10년째 골목을 누비고 있다. 믹스 커피통 몇 개를 입맛 따라 설탕커피, 프림커피, 일반커피로 나눠 판다. 장터 상인들에게는 별미와도 같다. 저 멀리 앉아 있던 할머니 상인이 손을 흔들며 “여기 냉코피(냉커피) 한잔 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눈 밑에 펼쳐진 장터 물건에 아이들도 호기심 가득
장터는 젊은 주부들에게도 인기다. 갓난아기를 안고 이마에 송골 맺힌 땀을 닦고 있던 주부 김혜정(31) 씨는 어릴 때부터 오일장을 다녔다고 했다. 마트보다 오일장에 온다는 그는 “옛날에 엄마랑 같이 왔던 그대로이기 때문”이라며 “예전부터 팔던 할머니들이 여전하시니까 덤으로 더 주시기도 하고 푸근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아이가 점점 무거워진다며 “(애가) 빨리 커서 같이 걸어다녔으면 좋겠어요”라고 혀를 쏙 내밀었다.
안시우(4) 양도 엄마를 따라 시장에 나왔다. 돈이 땀에 젖을 정도로 꼭 쥐고 있던 시우 양은 토마토 한 바구니를 가리키면서 5천원을 쑥 내밀었다. 시우 양의 엄마 신규진(34) 씨는 “아이가 흥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며 웃었다. “장터에는 바닥에 물건이 많다 보니까 시야에 다 들어와서인지 이것저것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더라고요.”
장터는 오랜 친구들이 만나는 정겨운 곳이기도 하다. 상인이나 물건을 사러 온 소비자나 “어~ 오셨수?”라며 일면식은 있는 사람들이다. 정오가 지나 햇볕이 뜨거워지자 상인들은 잠시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다를 떨기도 한다. 서로 달달한 냉커피를 한 잔씩 돌려 마시며 더위를 식힌다. 능숙한 솜씨로 알타리무 껍질을 다듬던 김광자(60대·가명) 할머니는 “아이고~반갑지. 5일 만에 만나는데 반갑지 않겠어?”라며 옆 상인을 툭툭 쳤다.
오전에 불국사와 석굴암을 먼저 들른 후 불국사공설시장을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아쉽다. 상인들과 흥정을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적은 현금으로 들어갔다 손 한가득 들고 나오는 봉지들이 묘한 뿌듯함을 주는 곳이다.
글과 사진·박지현 기자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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