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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철강도시에 핀 빛과 철의 건축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 내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Park1538 광양’.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철의 물성과 ‘빛의 도시’ 광양의 이미지를 담아낸 전시관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Park1538 광양
빛 광(光), 볕 양(陽). ‘빛과 볕을 품은 도시’ 전남 광양에 지난 4월 빛과 철로 빚은 새로운 랜드마크가 자리 잡았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내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Park1538 광양’이다. 기업 홍보관이자 지역 주민을 위한 열린 문화공간으로 4년 전 포항에서 선보인 Park1538의 두 번째 프로젝트다.
산업도시 한가운데 들어선 이 건축은 단순한 기업 시설을 넘어 산업의 기억을 도시의 미래로 재구성하는 건축적 제스처다. 폐쇄된 공장 부지를 시민에게 개방해 도시 동선을 재편하고 산업 유산을 공공의 일상으로 되돌리는 장치로 작동한다. 기업의 브랜드를 내세우기보다 지역과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설계돼 기술적 자산과 도시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이 건축물은 비정형 조형미로 유명한 건축가 장윤규·신창훈(운생동 건축사사무소)이 설계한 작품이다. 두 건축가는 기업 건축을 브랜드의 확장으로 보지 않고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적 흐름을 수용하는 플랫폼으로 재해석하며 도시의 미래를 그렸다. ‘Park1538’이라는 이름은 담장을 허물어 조성한 공원 ‘Park’와 철의 용융점(고체에서 액체로 바뀌는 온도) ‘1538℃’에서 가져왔다. 지역사회와 기업의 상생을 상징하는 명칭이다.

전시관은 1층 절반을 비워 광장 같은 공공 공간으로 활용한다. 이곳에 설치된 조형물 ‘스타(Star)’는 철이 녹는 점인 섭씨 1538℃를 형상화해 1538개의 스테인리스 구로 연출한 작품이다. 사진 건축사진가 세르지오 피오네

전시관과 교육관, 한 지붕 두 공간
Park1538 광양은 전시관과 교육관 두 동으로 나뉜다. 디자인적 흐름은 하나지만 기능적으로는 독립적 체계를 갖는다. 전시관은 캔틸레버 구조(한쪽만 고정한 건축구조)로 1층을 광장처럼 비워 공공 공간으로 활용했다. 3층 전시실은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구조로 다양한 전시 프로그램을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게 했다. 교육관은 환경 친화적 교육·연구를 목표로 하며 프로그램별로 실내와 외부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3층 아트리움과 대계단은 로비, 카페테리아, 대강당으로 이어져 지역사회의 교류를 촉진한다. 관람 동선은 입체적으로 순환하며 옥상 공간까지 연결해 도시의 풍경을 관람의 대상으로 확장한다.
전시관과 교육관은 서로 시각적·물리적으로 연결돼 있지만 프로그램과 이용 목적에 따라 독립성을 유지한다. 이를 통해 방문객은 건축을 단순한 건물로 경험하지 않고 시민과 산업, 교육과 문화가 겹치는 공간의 중첩된 체험을 할 수 있다.

Park1538 광양의 구조와 마감에 적극 활용된 갈빗대 모양의 뼈대인 리브(rib). 사진 건축사진가 세르지오 피오네

건물의 시작, ‘빛’
이 건축에서 ‘빛’은 핵심 모티브다. 광양이라는 지명에서 비롯된 빛의 상징성이 형태적 원리가 돼 건물 전체의 조형 언어를 규정한다. 외곽을 따라 흐르는 연속 곡면은 철의 단단함 속 유연성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며 조각적 형태이면서도 구조·기능·프로그램이 압축된 결과물이다. 외피에는 포스코의 대표 고내식 강재 ‘포스맥(PosMAC)’이 사용됐다. 약 4400톤에 달하는 철이 구조와 외피, 마감 전반에 적용돼 철의 조형적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건축적 선언으로 작동했다. 특히 광원과 그림자를 고려한 외부 패널 설계가 철의 강인함 속 섬세한 미적감각을 돋보이게 한다.

문화 용광로로서의 공공 플랫폼
Park1538 광양은 교육·전시·연구·커뮤니티 활동이 하나의 장소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복합 플랫폼이다. 철이 용광로에서 형태를 갖기 직전의 긴장과 가능성처럼 건축 역시 완결되지 않은 열린 상태를 지향한다. 외피를 구성하는 수십 개의 ‘리브(rib·갈빗대 모양의 뼈대)’는 단순 장식이 아니라 외피이자 구조체이며 내부 공간까지 규정하는 살아 있는 프레임이다. 전시관의 저층 매스(Mass·건물 덩어리) 위에 얹힌 대형 매스는 캔틸레버 구조로 시각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각 리브는 실 배치와 기능에 따라 구조와 외피, 마감을 재조정해야 했다. 초기부터 3차원(3D) 시뮬레이션을 통한 통합 설계가 요구된 이유다.
전시관은 지상층을 공공 광장으로 비우고 주요 프로그램 진행은 3층의 부유하는 매스에 배치했다. 이 플로팅 구조는 시각적 조형을 넘어 광양만 방향으로 열린 도시적 통로 역할을 한다. 전시 공간은 오픈 플랜(Open Plan·칸막이벽을 최소화해 여러 공간을 넓고 개방된 하나의 큰 공간으로 통합하여 사용하는 평면 설계 방식)으로 가변적 프로그램을 수용하며 수직 동선은 일반 관람객과 비즈니스 방문객을 분리한다.
관람 동선은 1층 이머시브 영상관에서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3층 전시장으로 올라간 뒤 24m 높이 테마홀을 따라 내려오는 순환 구조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내부 리브의 구조적 패턴은 또 하나의 전시 풍경이 된다. 건축은 전시를 담는 그릇이자 독립적 감각 대상으로 기능한다. 전시관 내부에는 빛과 철의 조형적 긴장이 극대화되도록 자연광과 인공조명을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관람객은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철 구조의 반복과 대비를 경험하며 산업도시 속 문화적 감각을 체감하게 된다.
교육관은 전시관과 또 다른 흐름을 형성한다. 3층 아트리움과 대계단은 수직적 개방감을 제공하며 강의실, 로비, 카페테리아, 대강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속된 흐름 속에 배치해 상호작용을 유도한다. 보행축은 공원과 연결돼 학습 환경에 안정감과 창의성을 불어넣는다. 교육관의 설계는 단순히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체험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도록 계획됐다. 각 강의실은 외부와 시각적 연결을 갖고 계단과 복도는 소통과 관찰의 장이 된다. 이 공간 안에서 건축은 학습과 발견의 매개체가 된다.

철광석이 자연의 4원소와 만나 철로 변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미디어아트로 몰입감 넘치게 보여주는 이머시브(immersive) 영상관. 사진 건축사진가 세르지오 피오네

산업의 기억을 미래 자산으로
이 건물에서 조경은 산업의 흔적을 자연의 풍경으로 번역하는 기념적 장치다. 평탄한 대지는 리브의 흐름에 따라 마운딩(얕은 구릉)된 지형으로 변모하고 초지, 언덕, 바람과 빛이 흐르는 개방적 공간을 구성한다.
가장 상징적인 요소는 제철 과정에서 사용된 파쇄공을 다듬어 만든 거대한 화분이다. 산업 유산을 자연의 매개체로 전환하며 장소의 기억을 현재의 풍경으로 되살리는 장치로 작동한다. 조경은 건축과 공공성을 잇는 마지막 층위로서 도시와 자연,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Park1538은 기업이 건축을 통해 도시의 맥락을 어떻게 새롭게 쓰고 재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산업도시라는 배경 속에서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공공성과 예술성을 더해 도시의 잠재력을 발굴했다. 단순한 건물을 넘어 지역의 문화·산업·교육을 통합하는 플랫폼이자 새로운 도시적 풍경을 창출하는 실험적 장치다.
한때 도시를 지탱했던 산업의 기억을 미래 자산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이 묵직한 질문에 Park1538 광양은 하나의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김미리 문화칼럼니스트
새 밀레니엄의 시작과 함께 신문사 문턱을 가까스로 넘은 26년 차 언론인. 문화부 기자로 미술·디자인·건축 분야 취재를 오래 했고 지금은 신문사에서 전시기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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