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법당에 들어가기는 어쩐지 망설여진다. 화려한 실내장식, 자비로운 동시에 서늘해 보이는 불상의 표정, 사뭇 진지한 얼굴로 절을 올리는 불자들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들일 곳이 아닌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하는 수 없이 유튜브로 법륜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그런데 듣다 보니 스님의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남편과 사별한 여성 불자가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알려달라며 지혜를 구하자 결혼도 안 해본 스님에게 왜 그런 걸 물어보냐는 말씀에 한 번 폭소. “니는 차암 좋겠다. 그 어려운 결혼을 두 번이나 할 수 있잖아. 남들은 남편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있어서 또 하고 싶어도 못 해” 하는 말씀에 또 한 번 폭소했다. 뭐야, 불교가 이렇게 웃긴 거였어?
그럼에도 불교는 멀게만 느껴졌다. 대부분의 스님은 개그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혜성처럼 등장한 ‘뉴진스님’ 덕에 불교의 진입장벽이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뉴진스님은 개그맨 윤성호의 캐릭터로, 젊은 세대에 불교 문화를 재미있게 알리기 위해 승려 복장을 한 채 디제잉을 한다. 불교 박람회에 청년들이 벌떼처럼 모여든 건 모르긴 몰라도 그의 덕일 것이다. 불교 박람회에서 뉴진스님 버금가는 인기를 끈 건 ‘해탈컴퍼니’에서 제작한 티셔츠였다. ‘중생아 사랑해’, ‘극락도 락이다’라고 쓰인 티셔츠를 어찌 사지 않고 배긴단 말인가. 해탈컴퍼니는 중생의 사랑에 힘입어 ‘깨닫다!’라는 필사집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큰 도파민, 그건 바로 깨달음이니라.” 도파민 중독자인 나는 카피에 홀리듯 이끌려 책을 펼쳤다.
해탈컴퍼니의 공동대표인 주여진·주현우는 남매지간이다. 이제 막 20대를 벗어난 남매가 어쩌다 불경 필사집을 출간하게 되었을까. 알고 보니 그들은 뿌리부터 달랐다. 남매의 아버지가 ‘행복자비선원’의 주지인 태현스님이란다. 스님과 아버지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불교의 한 종파인 ‘태고종’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남매는 스님을 아버지로 둔 덕에 어린 시절부터 절에서 자라며 자연스레 수행과 명상을 접했고 자신들이 느낀 행복을 위트 있게 전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목표는 이 책의 첫 장에서부터 명확하게 보인다. ‘개큰지혜’ ‘응 수행 정진하면 돼~’라는 목차를 보고 나는 그만 피식 웃고야 말았다. 사실 출판계에서는 유행어를 지양한다. 유행은 금방 지나가기 때문이다.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텍스트에 나의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무릇 필사집이라 하면 왼편에는 필사할 구절을 수록하고 오른편에는 그것을 옮겨 적을 공간을 주는 단순한 형식을 취한다. 이 책 역시 이러한 형식을 기본으로 한다. 다만 오른편에 다양한 변주를 주어 재미를 더했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점을 이어 나뭇잎 그림을 그리게 하고, 절하는 모양인 ‘OTL’을 백팔 번 따라 쓰게 하며 손으로 하는 백팔배를 시키기도 한다. ‘놀이형 수행집’이라는 저자들의 의도에 딱 맞는 구성이라 할 수 있겠다. 마냥 놀기만 하다 보면 얻을 것이 없지 않겠냐는 오해는 금물이다. ‘부처’란 특정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모든 무지와 집착을 끊고 진실을 스스로 깨달은 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이라는 사실도, ‘건달’은 일정한 거처 없이 하늘을 떠돌며 향기를 먹고사는 존재인 ‘건달바’라는 신에서 유래한 단어라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불교 경전은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는 걱정은 내려놓아도 좋다. ‘법구경’, ‘유마경’, ‘화엄경’ 등에서 발췌한 말씀을 해탈컴퍼니만의 시선으로 쉽게 해석해 두었으니 말이다. 모두 다 좋은 말씀이었지만 개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건 해탈컴퍼니 남매의 아버지인 태현스님의 책 ‘몸이 마음에게 묻는다’에서 발췌한 구절이었다. ‘지금 내가 게으르다면 충분히 게으르십시오. 그것도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필연] 그 게으름에 집중합니다. 그 게으름의 인연이 완전 연소될 때까지 완벽하게 게으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면 다시는 같은 게으름은 오지 않게 됩니다. 그 에너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연]’ 이에 덧붙인 해탈컴퍼니의 코멘트는 나를 또 한 번 웃게 했다. “진짜 충격! 게을러도 됨!” 새해에 적응 중이라는 말로 여태껏 빈둥거리며 죄책감을 느끼던 나는 진짜로 충격을 받았다.
어두운 동굴에서 잠을 자다 일어나 해골에 담긴 물을 달게 마셨던 원효대사의 일화를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를 깨달은 원효대사는 부처의 진리를 구하기 위해 당나라로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중생을 위한 길거리 포교를 시작했다. 광대가 가지고 노는 큰 박통을 두드리며 불법에 가락을 붙여 노래하고 춤을 췄다. 그 덕에 높으신 분들끼리만 공유하던 부처의 가르침이 대중에 널리 퍼졌다. 어쩌면 해탈컴퍼니는 원효대사의 환생이 아닐까. 나 같은 불교 무지렁이를 불경 필사로 이끌었으니 말이다. 낙서하듯 재미있게 놀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최종 미션은 이 책과 함께하며 깨달은 점을 적는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미소를 지으며 펜을 움직였다. 불경 필사 개큰재미!
이주윤
여러 작가의 문장을 따라 쓰다 보니 글쓰기를 업으로 삼게 됐다.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문해력’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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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