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국가재정전략회의로 본 대한민국 미래 투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톱다운(Top-down) 예산제도가 작동하는 핵심 무대다. 정부가 총지출 규모와 분야별 한도를 먼저 확정하면 각 부처는 그 틀 안에서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살릴 사업은 살리고 성과가 떨어지는 사업은 줄이거나 미루는 작업이 뒤따른다.
7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회의에는 필자를 비롯해 정부·여당 인사, 민간 전문가, 시민사회 관계자 등 130여 명이 자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고 전 과정이 사상 처음으로 생중계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회의가 갖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재정의 역할이 바뀌다
대통령은 재정운용의 3대 원칙으로 대규모 추가세수를 전략적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것, 3대 메가프로젝트를 새로운 성장 기회로 만드는 것,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성장을 실현하는 것을 제시했다. 재정의 역할도 달라졌다. 경기 변동을 완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병목을 찾아 해소하는 신산업정책의 주체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이런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예년과 다른 세수 여건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내년 국세 수입이 당초 예상한 412조 원을 크게 웃도는 500조 원+α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낸 사상 최대 세수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 총지출도 올해보다 10% 넘게 늘어난 800조 원+α, 역대 최대 규모로 짜인다.
새로운 곳에 돈을 쓰려면 기존 지출부터 과감히 손봐야 한다. 정부가 세수 증가에만 기대지 않고 50조 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함께 추진하는 이유다. 지난해 재량·의무지출을 합쳐 27조 원이던 구조조정 목표는 거의 두 배로 확대됐다. 재량지출은 15%, 의무지출은 10%를 절감 기준으로 제시했고 통합재정사업성과평가 결과 901개 사업이 감액·폐지·통합 대상 후보에 올랐다.
확보된 재원의 상당 부분은 새로 만들어질 미래대응기금으로 향한다. 장기 추세를 초과하는 추가세수를 이 기금에 쌓아 미래 성장동력, 청년, 지방, 인재 등 4대 분야에 집중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박 장관은 이를 두고 단년도 예산의 한계를 넘어서는 재정운용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고 설명했다. 부처별로 원하는 사업을 모아 예산을 배분하던 상향식 관행에서 벗어나 국가 차원의 우선순위를 먼저 세우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정부가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3대 메가프로젝트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회의에서 제시된 숫자들은 정부가 선택한 정책의 규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2029년까지 민간이 계획한 AI 데이터센터 투자는 SK 5GW, GS 2.4GW, 네이버 1GW를 합쳐 총 8.4GW에 이른다. 정부는 범부처 지원체계를 꾸려 인허가와 제도를 정비하고 핵심기술 개발과 테스트베드, 클러스터 구축까지 뒷받침할 계획이다. 피지컬 AI 역시 2030년 세계 1위 도약을 목표로 내걸었으며 활용 분야도 제조업을 넘어 국방·돌봄·농업·치안으로 확대된다.
반도체 부문의 민간 팹 투자 규모는 사상 최대인 957조 원에 달하며 이 가운데 800조 원은 호남권에 집중된다. 광주 군 공항 부지에는 산업·혁신·정주 기능을 한데 모은 기업형 첨단도시가 들어서고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인허가 패스트트랙이 이를 뒷받침한다. 경기 용인 국가산단은 2029년 첫 팹 가동을 목표로 하며 산업단지를 관통하는 국도 45호선 확장 사업도 올해 8월 발주에 들어간다. 이 계획을 제도적으로 떠받칠 메가특구특별법과 반도체특별법 제정 작업도 함께 추진 중이다.
정부가 길을 만들고 민간이 뛴다
정부 재정이 민간 투자를 대신할 수는 없다. 재정이 힘을 쏟아야 할 곳은 전력·용수·입지·교통망·인허가·기술개발처럼 기업이 혼자 풀기 어려운 병목이다. 공장을 대신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민간 투자가 제때 이뤄지도록 여건을 먼저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 역할의 핵심이다. 실제로 회의에서는 공장 지붕 태양광 의무화와 해상·육상풍력을 통한 발전단가 인하, 배터리 저장시스템을 활용한 전력계통 안정화 방안이 논의됐다. 용수 확보를 위해 발전용과 농업용으로 나눠 있던 댐 기능을 다목적으로 통합하고 광역상수도를 정비해 새는 수자원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를 그때그때 소진하는 대신 미래의 생산능력으로 바꿔놓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국가채무비율을 포함한 중기재정을 당초 계획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확장재정과 재정건전성이라는 두 목표는 여전히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추가세수를 어떤 기준으로 산정하고, 어떻게 적립·인출하며, 투자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명확해야 하는 이유다.
미래를 향한 투자는 산업 기반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AI 전환에 대응할 청년 전문인력 20만 명+α를 길러내고 민간·공공 일자리와 창업 지원을 통해 30만+α의 기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청년형 ISA 출시, 신혼부부 주택자금 대출 소득기준의 한시적 완화도 함께 추진한다. 플랫폼·프리랜서 등 비정형 노동자를 위해서는 일터든든·복지든든·안심든든·성장든든·노후든든이라는 ‘5대 든든’ 과제와 K-노동회의소 설립 방안도 논의됐다. 전 국민 1인 1 AI 에이전트를 지향하는 ‘모두의 AI’는 연내 공공 AI 에이전트 출시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고도화될 예정이다.
성과를 재는 잣대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지출 규모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 투자가 산업의 외형 성장에 그치지 않고 국민이 체감하는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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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