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유언대용신탁’, 상속 분쟁 막는 만능열쇠일까요?

김 사장님은 올해 일흔둘입니다. 30년 동안 순댓국집을 하며 시세 8억 원쯤 되는 상가 건물 한 채를 마련했고 예금도 조금 모았습니다. 아내는 몇 해 전 먼저 떠났고 자녀가 셋 있습니다. 김 사장님은 건물을 큰딸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가게를 같이 지키고 병원에도 늘 함께 가주는 딸이니까요.
마음에 걸리는 건 나머지 두 자녀입니다. 부모 장례를 치르자마자 형제끼리 소송을 했다는 이야기가 요즘 심심찮게 들립니다. 그러던 차에 거래 은행 창구에서 안내장을 하나 받았습니다. 유언장 없이도 원하는 사람에게 재산을 넘길 수 있고 상속 분쟁도 줄일 수 있다는 유언대용신탁 광고였습니다. 은행 직원은 “건물을 은행에 맡기면 나중에 큰따님께 넘어갑니다”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정말 계약서 한 장으로 상속 분쟁까지 막을 수 있을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유언대용신탁은 잘 쓰면 편리한 제도입니다. 다만 광고 문구만 믿고 가입했다가는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받아들 수 있습니다.
❶ 유언대용신탁, 도대체 무엇인가요?
신탁은 ‘믿고 맡긴다’는 뜻입니다. 재산 주인인 위탁자가 은행 같은 금융기관을 수탁자로 정해 재산을 맡기면, 수탁자는 계약에서 정한 사람(수익자)에게 그 이익을 지급합니다.
유언대용신탁은 말 그대로 유언 대신 쓰는 신탁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본인이 수익자가 돼서 월세나 이자를 받습니다. 사망한 뒤에는 미리 정해둔 사후수익자가 재산을 넘겨받습니다. 근거는 신탁법 제59조입니다. 위탁자는 살아 있는 동안 수익자를 바꿀 수 있고, 사후수익자는 위탁자가 사망하기 전에는 권리를 쓸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살아 있을 때 계약으로 써두는 유언장’입니다.
❷ 유언장과 비교하면 무엇이 좋은가요?
우선 형식을 두고 다툴 일이 줄어듭니다. 민법상 유언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같은 정해진 방식을 엄격히 따라야 합니다.(민법 제1060조, 제1065조) 날짜나 주소 하나 빠뜨려 무효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유언대용신탁은 금융기관과 맺는 계약이어서 이런 시비가 덜합니다.
재산을 넘기기도 수월합니다. 유언장이 있어도 예금을 찾거나 등기를 옮길 때 다른 상속인의 동의서를 요구받는 일이 많습니다. 신탁재산은 이미 금융기관 명의로 돼 있으니 계약대로 수익자에게 넘기면 끝입니다.
설계도 자유롭습니다. 한꺼번에 주지 않고 매달 생활비처럼 나눠줄 수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배우자에게, 배우자마저 떠나면 자녀에게’처럼 받을 순서를 정해 둘 수도 있습니다.(신탁법 제60조, 수익자연속신탁)
❸ 유류분도 피할 수 있나요?
여기가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유류분은 법이 상속인에게 떼어둔 최소한의 몫입니다. 자녀와 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부모는 3분의 1을 보장받습니다.(민법 제1112조) 형제자매의 유류분은 2024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에 따라 폐지됐습니다.
한때 신탁한 재산은 유류분 계산에서 빠진다는 하급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재산 명의가 이미 은행으로 넘어갔다는 논리였습니다. 그 뒤로 유언대용신탁이 ‘유류분 피하는 방법’처럼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신탁재산을 유류분 계산에 넣은 원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대법원 2024. 7. 11. 선고 2019다294466 판결) 서울고등법원도 특정 자녀가 신탁재산을 받은 사건에서 그 재산을 유류분 계산에 넣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5. 1. 9. 선고 2021나2051264 판결) 신탁으로 유류분을 빠져나가게 두면 유류분 제도가 껍데기만 남는다는 판단입니다.
김 사장님 사례에 대입해 봅시다. 건물을 신탁으로 큰딸에게 모두 넘겨도, 두 자녀는 각자 전체 재산의 6분의 1씩을 유류분으로 돌려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속세도 줄지 않습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9조가 피상속인이 신탁한 재산을 상속재산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❹ 비용은 얼마나 드나요?
유언장 작성 비용보다 비쌉니다. 공증인 앞에서 유언을 남기는 공정증서 유언은 재산이 많아도 수수료가 300만 원(부가세 별도)을 넘지 않습니다. 유언대용신탁은 계약할 때, 관리하는 동안, 사망 후 재산을 넘겨줄 때 각각 보수가 붙습니다.
한 시중은행 상품 안내를 보면 계약할 때 내는 기본보수와 사망 후 내는 집행보수가 따로 있습니다. 맡긴 재산이 1억 원 이상 10억 원 미만이면 재산의 0.4%(최저 200만 원)이고, 10억 원 이상이면 0.2%(최저 400만 원)입니다. 재산 종류에 따라 개별보수가 따로 붙고 부가세나 등기 비용이 더해질 수 있습니다.
김 사장님이 8억 원짜리 건물을 맡긴다면 기본보수 320만 원, 집행보수 320만 원만 해도 640만 원입니다. 여기에 관리보수 등이 더해집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특정 금융기관의 상품 기준이므로 모든 유언대용신탁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동산이라면 불편도 감수해야 합니다. 등기부상 소유자가 금융기관으로 바뀌어서, 담보대출을 받거나 건물을 팔거나 세입자와 계약할 때마다 수탁자를 거쳐야 합니다. 대출이 있거나 권리관계가 복잡한 부동산은 아예 받아주지 않기도 합니다.
❺ 어떤 집에 맞고, 어떤 집에 맞지 않을까요?
유언대용신탁이 특히 유용한 경우가 있습니다. 재혼한 A씨는 자신이 사망한 뒤 현재의 아내가 사는 동안 건물 월세를 받게 하고, 아내가 사망하면 전처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에게 건물이 가도록 하고 싶습니다. 유언으로는 이런 ‘두 단계 상속’을 정해두기 어렵지만 신탁은 가능합니다. 수익자연속신탁을 쓰면 순서대로 재산이 넘어가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가 있는 딸을 둔 B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목돈을 한꺼번에 물려주면 딸이 관리하기 어렵고 주변 사람에게 돈을 뺏길까 걱정입니다. 신탁으로 맡겨두면 매달 정해진 생활비가 딸에게 나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판단력이 흐려지기 전에 재산관리 방법을 미리 정해둔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반대로 기대만큼 효과가 없는 경우도 분명합니다. 의절한 아들에게 한 푼도 주지 않으려고 신탁에 가입했다면 목적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앞서 본 대로 아들은 여전히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상속세를 줄이려는 목적이라면 더더욱 맞지 않습니다.
재산이 아파트 한 채와 예금 정도로 단순하고 자녀들 사이도 원만한 집이라면 어떨까요? 수백만 원의 보수를 내며 신탁을 할 이유가 크지 않습니다. 공정증서 유언으로도 충분히 뜻을 남길 수 있습니다. 조만간 건물을 팔거나 담보대출을 받을 계획이 있다면 신탁 때문에 절차가 번거로워질 수 있다는 점도 따져봐야 합니다.
신탁(信託)이라는 말에는 ‘믿고 맡긴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재산은 은행에 맡길 수 있어도 가족 사이의 믿음까지 계약서가 대신해주지는 못합니다. 상속 설계는 법이 정한 몫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 위에 부모가 왜 그렇게 나누려는지 차분히 설명하는 과정이 있어야 분쟁 없는 상속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장변의 돈이 되는 Tip
유언대용신탁, 이렇게 활용하세요!
● ‘분쟁 방지’, ‘생활비 분할 지급’, ‘재혼가정의 상속 순서’처럼 왜 신탁이 필요한지 한 줄로 적어보세요.
유류분 회피나 절세가 목적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맞습니다.
● 상속인마다 유류분이 얼마인지 따져보고 그만큼은 다른 재산으로 남겨두세요.
나중에 소송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 기본보수, 관리보수, 집행보수를 합친 총액을 금융기관 두세 곳에서 받아보세요.
중간에 해지하거나 수익자를 바꿀 때 드는 비용과 절차도 함께 확인하세요.
● 특정 자녀에게 더 주려는 이유가 있다면 간병이나 가게 운영 같은 사정을 자료로 남겨두세요.
분쟁이 생겼을 때 부모의 뜻을 보여주는 근거가 됩니다.
장영화
기업의 시작과 성장을 돕는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이자 창업 15년 차 기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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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