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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일러스트 이기진

하늘은 한여름의 뭉게구름에서 파란 하늘에 넓게 펼쳐진 새털구름으로 변했다. 녹음 역시 여름의 초록에서 가을의 초록으로 변해가고 있다. 매미 소리가 어느 순간 귀뚜라미 소리로 바뀌었다. 계절 변화에도 임계점이 있는 걸까? 새벽까지 이어지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동화 속 가을 나라에 사는 듯하다. 달님은 지구가 이렇게 아름답게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까?
어느덧 추석이 됐다. 추석은 달과 직접 연결돼 있다. 봄부터 땀 흘려 일한 보람의 시간과 밤하늘 달의 시간이 음력 8월 15일 보름달로 만나기 때문이다. 달은 약 29.5일을 주기로 차고 기운다. 초승달에서 시작해 조금씩 커지다가 보름 무렵이면 꽉 찬 보름달이 된다. 보름이 되면 하나의 둥근 원이 완성된다. 하늘의 시간이 충만해지는 순간이다.
서울 종로구 인왕산 자락에서 바라보는 달은 마치 동양화 같은 느낌을 준다. 겸재 정선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할 때 다락방에서 바라본 달빛은 이렇지 않았다. 수평으로 이어진 지붕 위의 달은 어떨 때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었고, 어떨 때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속 달빛처럼 보였다. 일본에서 열심히 연구하던 시절의 달은 나를 지켜보는 수호신이었다. 새벽까지 연구실에서 실험하다 잠시 건물 테라스에 나와 바라본 달은 밤새워 일하는 나를 지켜보며 용기의 말을 건네는 듯했다. “조금만 더 해보자!” 지난해 코카서스의 고산지대인 아르메니아에서 바라본 달은 상상 이상으로 밝고 컸다. 달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존재인가 싶을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

왜 지구인들은 달을 친근하게 느낄까
달은 지구의 분신이다. 지구를 구성하던 물질의 일부가 달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달은 지구의 가족이다. 아폴로 우주비행사가 달에서 가져온 월석과 지구 암석의 산소 동위원소를 비교해본 결과 두 천체의 조성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달에는 지구의 DNA가 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달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달의 탄생은 우주의 전체 역사로 볼 때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사건이다. 138억 년 전 우주가 태어나고 수많은 별이 생겨나고 사라진 뒤 약 45억 4000만 년 전 지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 곁에 달이 태어났다.
달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설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먼저 지구의 일부가 떨어져나가 만들어졌다는 분열설이 있다. 초기 지구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일부 물질이 떨어져나가 달이 됐다는 설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현재 지구와 달의 각운동량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달이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다음 지구의 중력에 붙잡혔다는 포획설도 있다. 그러나 달처럼 큰 천체를 포획해 지금과 같은 궤도로 옮겨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구와 달이 같은 시기에 함께 만들어졌다는 공동형성설 역시 일부는 설명할 수 있지만 지구와 달의 철 함량 차이 등을 설명하기엔 부족한 가설이다.
현재 가장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거대충돌설이다. 초기 지구에 ‘테이아’라는 원시행성이 충돌하면서 지구와 테이아의 파편이 우주 공간으로 튀어나갔고 이 물질들이 원반처럼 지구 주위를 회전하다가 중력에 의해 뭉쳐져 달이 됐다는 가설이다. 충돌 후 지구에서 떨어져나간 물질이 달이 됐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맞는다면 달은 우리의 형제이자 가족이다. 우리가 달을 바라볼 때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 헤어진 존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달의 노란 빛이 좋다
달빛은 태양빛이 달 표면에 반사돼 지구까지 여행해온 빛이다. 달 표면 자체는 회색에 가깝다. 우리가 보는 달빛은 태양빛이 달에 닿았다가 지구로 돌아온 잔향이라고 할 수 있다. 낮에도 하늘에는 달이 떠 있다. 밝고 푸른 하늘과 대비돼 흰색으로 보인다. 밤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달이 푸른 하늘에 희미하게 떠 있다. 우리는 이런 달을 ‘낮달(day moon)’이라고 부른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낮달은 주목받지 못한 존재처럼 희미하다. 어쩐지 지구를 떠나지 못하는 마음 같다. 마치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가 밝은 세상 속 고독을 표현한 그림 속 풍경 같다. 분명 존재하는 풍경이지만 어딘가 세상과 떨어져 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잠시 걸음을 멈춰 낮달을 올려다보면 비껴난 일상에서 발견하는 기쁨과 고독이 마음에 번진다. 나는 푸른 하늘의 구름도 좋지만 낮달도 좋다.
밤의 달빛은 부드럽다. 달빛은 매우 약한 빛이다. 태양빛에 비해 수십만 배 어둡다. 그래서 눈을 자극하거나 사물의 색과 경계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색은 옅어지고 세상의 모습은 한결 차분해진다. 부드러운 달빛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달을 거쳐 먼 길을 찾아온 빛이어서인지도 모른다.
추석이 되면 그리운 음식이 있다. 송편이다. 보통 송편이 아니라 말라서 갈라진 송편이다. 추석 때 만든 송편은 시간이 지나면 딱딱하게 마르고 갈라진다. 어머니는 그렇게 남겨진 송편을 다시 쪄주셨다. 갈라지고 딱딱했던 송편이 말랑말랑해지고 송편 속 설탕 고물은 어느 때보다 달콤해졌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추석의 추억이 있겠지만 나는 이 송편이 그립다. 그리고 추석이 되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보름달을 바라보며 우주에 계신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싶다.

기진
이기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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