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최근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병역특례 논란이 거세다. 병역 자원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특정 분야의 성취만으로 혜택을 주는 것이 공정한가라는 의문이다. 특히 혜택을 받는 선수들이 국가적 성원보다 병역면제라는 개인 혜택에만 몰입한다면 이는 공정을 넘어 부당함의 문제가 된다. 필자 역시 시대 변화에 맞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그에 앞서 우리가 국가대표에게 ‘자신이 무엇을 대표하는지’ 제대로 가르쳤나부터 되짚어봐야 한다.
국가대표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슴에 달고 세계와 경쟁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대표’란 누군가를 대신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대표하는 대한민국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몇 사람이 모여서 공동의 이익을 모색하기 위한 협력체도 아니다. 고조선에서 시작해 고구려와 백제, 신라, 그리고 고려와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간 이 땅의 사람들이 언어와 문화, 전통을 이어온 역사의 결집체다.
그 역사는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거듭된 외세의 침략이 있었고 그때마다 우리 선조들은 목숨을 걸고 외세에 맞서 공동체를 지켰다. 이름 없는 백성과 승려들이 의병으로 일어났고, 선비들이 지휘관 역할을 수행했고, 수많은 이가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다. 그 참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기록이 1254년 몽골 침입이다. ‘고려사’는 그 한 해에만 20만 6800여 명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고 살해된 자는 헤아릴 수 없었다고 기록한다. 당시 인구를 800만 명으로 추산하면 전체의 약 2.6%가 단 한 해에 포로로 끌려간 것이다. 오늘날 남북한 인구를 약 8000만 명으로 계산하면 약 200만 명이 한꺼번에 끌려간 것과 같다. 이후에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참혹한 전쟁이 이어졌다. 임진왜란에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병자호란 때는 50만 명에 이르는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다는 기록도 전한다. 우리가 짊어진 역사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태극마크에는 선조들의 희생이 담겨 있다
선조들이 지키려 한 것은 단순한 왕조가 아니었다. 부모와 자식이 살아갈 터전, 물려받은 말과 문화, 그리고 후손에게 넘겨줄 삶 그 자체였다. 그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K-컬처로 대변되는 눈부신 성취를 이뤘다. 문화적 성공에 앞서 경제 분야와 정치 분야에서도 인류 역사에 보기 드문 대단한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는 오늘의 찬란한 성취는 무(無)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선조들이 피와 눈물로 지켜낸 영토와 역사, 전통과 문화라는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 국민은 수천 년 역사의 바통을 넘겨받아 대한민국의 영광을 이어가는 계주 선수와 같다. 그중에서도 국가대표는 세계 무대에서 외국 선수들과 경쟁하며 대한민국의 존재를 직접 드러내는 대표 선수다. 가슴의 태극마크에는 현재의 응원뿐 아니라 공동체를 지켜온 선조들의 희생도 함께 담겨 있다. 우리 국민이 태극기가 게양될 때 가슴 벅차하는 이유는 그 깃발이 선조들의 열망과 헌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정한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국가대표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이유는 단순히 운동을 잘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와 명예를 짊어지고 특별한 성취를 거둔 것에 대한 공동체의 예우다. 따라서 예우를 받는 이에게도 그에 걸맞은 감사와 겸손, 책임감이 필수다. 만약 선수가 ‘내 능력이 뛰어나 얻은 당연한 결과’라고만 생각한다면, 그는 뛰어난 운동선수일지는 몰라도 국가를 ‘대표’하는 자격은 부족하다. 다만 국민을 실망시키는 발언을 한 운동선수가 역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면 나이 어린 그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좋은 대책이 될 수는 없다. 그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았다면 적어도 그런 인식과 발언이 나올 가능성은 줄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적절한 교육이 없었던 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교육 정책과 스포츠 정책에서 결함을 찾아야 한다.
국가대표 교육체계 필요
결국 병역특례 개편 논의와 함께 국가대표 교육의 본질과 프로그램을 재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태극마크가 어떤 역사를 거쳐 자신에게 왔는지, 왜 국민이 특별한 명예를 부여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국난의 시기마다 선조들이 왜 목숨까지 내놓으며 공동체를 지키려 했는지 성찰하게 해야 한다.
국가와 역사가 부여한 대표성을 기꺼이 짊어지고 뼈를 깎는 노력과 열정으로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상에 떨친 이에게 공동체가 특별한 예우를 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대표를 단지 운동능력이 뛰어난 개인으로만 본다면 병역특례는 매우 부당한 것으로 신속하게 폐지해야 한다. 우리 앞에는 하나의 선택이 남아 있다. 국가대표를 수천 년 역사를 이어가는 상속자로 대우하며 그에 걸맞은 영광과 책임을 부여할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유능한 개인으로 대우할 것인가.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 특별한 영광임을 알고 그 무게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국가대표 교육체계를 재조정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병역특례 개편 논의에서 반드시 포함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다.

왕선택
서강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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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