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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격월간 시사잡지 ‘사상계’가 최근호에서 발표한 독자 핵무장 관련 여론조사 결과에는 우려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독자 핵무장 찬성이 83.5%에 달한 것이다. 사실 독자 핵무장론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2010년대 초반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헌법에 명시하는 등 핵무기 위협을 강화하면서 독자 핵무장 찬성 여론은 60% 안팎에서 등락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2023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76.6%를 기록한 데 이어 이번에 80%대를 훌쩍 넘어서면서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북한 핵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독자 핵무장 선호가 커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직관과 달리 독자 핵무장론은 오히려 우리 외교·안보 전략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찬성 여론이 높아지는 것은 독자 핵무장론이 안고 있는 전략적 문제점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독자 핵무장론 역설의 다섯 가지 이유
독자 핵무장론이 국익을 훼손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제법 위반에 따른 국제 제재 가능성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1970년 발효 당시 핵보유국으로 인정된 5개국을 제외한 모든 가입국의 핵무기 개발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이 이를 위반할 경우 평화적 원자력 협력이 중단될 뿐 아니라 광범위한 경제 제재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자력 연료 공급과 첨단산업 협력, 금융 거래, 수출입 환경 등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이는 한국 경제성장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 ‘NPT를 탈퇴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북한 역시 NPT를 탈퇴했지만 국제 제재를 피하지 못했다.
두 번째 이유는 핵무기 개발이 가져올 이익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점이다. 독자 핵무장이 북한 핵 위협을 완전히 무력화하지도 못한다. 핵무기는 만능의 보검이 아니다. 냉전 시기 소련은 미국보다 많은 핵무기를 보유했지만 국가 붕괴를 막지 못했다. 영국 역시 핵보유국이었지만 1956년 수에즈 위기에서 미국과 소련의 압력에 굴복해야 했다. 오늘날에도 중국과 인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도 국경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중동지역 군사 충돌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보유한 핵무기는 이란을 억제하는 변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핵무기가 국가 위상을 자동으로 높여주는 것도 아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제적 위상이 핵무기 보유 자체 때문에 높아졌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 번째 이유는 한국이 핵무기 개발에 나서더라도 미국이 동맹 관계를 중시해서 묵인할 것이라는 기대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스라엘이나 영국, 프랑스 사례를 거론하지만 역사적 배경은 전혀 다르다. 이스라엘은 NPT 발효 이전인 1960년대에 핵무기 개발을 완료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은 1940년대부터 미국과 공동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고, 프랑스 역시 NPT 발효 이전에 핵무기를 보유했다.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비확산 체제가 없었기 때문에 맥락이 크게 다르고, 오늘날 한국 상황과 단순 비교하기도 어렵다.
네 번째 이유는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할 현실적인 대안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미동맹의 확장억제 체제다. 일부에서는 확장억제가 신뢰하기 어려운 약속이라고 평가하지만 미국은 이를 유지해야 할 전략적 이유를 갖고 있다. 만약 미국이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제를 포기한다면 동맹 체제 전체의 신뢰가 흔들리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역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군이 구축하고 있는 3축 체계, 즉 킬체인(Kill Chain),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대량응징보복(KMPR)도 중요한 억제 수단이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하기 어렵게 만들고, 발사하더라도 요격 가능성을 높이며, 설령 공격이 성공하더라도 압도적인 보복이 뒤따른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이 핵심 목적이다. 현재 기술적 한계가 지적되는 부분도 있지만 인공지능(AI)과 센서, 지휘통제 기술의 발전, 그리고 정밀타격 능력과 사이버전, 우주감시 체계까지 발전한다면 자체 방어 역량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섯 번째 이유는 독자 핵무장론이 역설적으로 핵무장 잠재력 확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과거 핵무기 관련 활동이 국제사회에 적발된 경험 때문에 이미 엄격한 검증을 받고 있다. 1970년대 정부 차원의 핵무기 개발 시도가 있었고 이후 일부 핵 관련 실험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문제 제기를 받은 바 있다. 그 결과 한국은 지금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문제에서 국제사회의 엄격한 신뢰 검증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핵무장 여론이 80%를 넘는다면 국제사회는 한국 의도를 더욱 의심할 것이다. 그 결과 핵연료 주기 기술이나 핵잠수함 추진에 필요한 기술 협력과 제도 개선 역시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전략적 선택지를 넓히는 가장 효과적인 길
북한 핵 위협은 현실이고 우리는 대응책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국가전략은 분노 표출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 수립돼야 한다. 진정한 국익은 감정적인 구호나 거친 말투로 달성되지 않는다. 독자 핵무장론 확산은 한국인의 결기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무장 잠재력 확보조차 가로막는 자충수일 뿐이다. 국제사회 신뢰를 유지하면서 핵연료 주기 기술과 원자력 산업을 발전시키고, 한미동맹과 확장억제, 자체 방어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전략적 선택지를 넓히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왕선택
왕선택 서강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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