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상권이 커져도 밀려나지 않게!” 전국 첫 지역상생구역 함께 사는 방법을 찾다

박영순 행궁동 지역상생협의체 대표
경기 수원시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을 따라 걷다 보면 화성행궁으로 이어지는 팔달구 행궁동 골목이 나온다. 평일임에도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을 찍느라 걸음을 멈추는 사람, 골목 안쪽으로 향하는 사람, 카페와 식당을 드나드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오래된 점포 사이로 새 가게가 들어섰고, 주민과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섞인다. 행궁동은 이제 수원을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골목상권으로 자리 잡았다.
골목에는 활기가 더해졌지만 그곳을 오래 지켜온 사람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사람이 몰리고 상권이 커지는 만큼 임대료가 오르고 점포가 바뀌었다. 기존 상인과 주민이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행궁동 상인들은 직접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2024년 9월 상인들은 지역상생협의체를 꾸렸다. 상인과 주민, 건물주 등 지역 구성원의 목소리를 모아 상권의 성장을 이어가면서도 기존의 삶터를 지킬 방법을 찾기로 했다.
박영순 행궁동 지역상생협의체 대표를 중심으로 상인·주민·건물주 등 지역 구성원의 의견을 모아 지역상생 방안을 논의한 결과 2026년 1월 행궁동 일부 구역이 전국 최초 ‘지역상생구역’으로 지정됐다.
지역상생구역은 상권의 변화를 막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상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주민과 상인이 함께 지속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관광객이 몰리는 행궁동에서 ‘뜨는 동네’와 ‘살 수 있는 동네’를 함께 만들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그 한가운데 박영순 행궁동 지역상생협의체 대표가 있다. 행궁동의 평범한 주민이었던 박 대표는 동의서를 들고 골목을 누비며 상인과 건물주를 한 사람씩 만나 지역상생구역 지정을 이끌었다. 전국 최초 지역상생구역 지정 후 1년을 향해가는 지금, 박 대표를 만나 행궁동 골목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상생은 무엇인지 물었다.

지역상생구역이라는 이름부터 낯설다. 지정되면 무엇이 달라지나.
지역상생구역은 상권이 커지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기존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상업지역이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고 도·소매나 용역 점포가 100개 이상인 곳 가운데 최근 2년 동안 상가 임대료가 매년 5% 넘게 오른 지역이 신청할 수 있다.
지역상생구역으로 지정되면 상인과 건물주가 상생협약을 맺어 임대료 인상 폭을 5% 이내로 제한할 수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가맹본부의 프랜차이즈 직영점 입점을 제한할 수도 있다. 결국 기존 상인이 급격한 임대료 상승이나 대형 프랜차이즈의 진입으로 밀려나는 것을 막고 지역 상권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지역상생구역 설정 이전 행궁동은 어땠나. 상생이라는 말이 필요했나.
2024년 무렵 행궁동은 상권이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그만큼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등이 올라 기존 상인·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에 대한 걱정도 커졌다. 수원시 젠트리피케이션 위험지표 평가에서도 행궁동은 ‘경계’ 단계 판정을 받았다. 자본이 들어오면서 부동산 시세와 유동인구, 매출액이 증가했고 주택을 중심으로 신규 상가가 들어설 가능성이 컸다.
업종 전환이 활발하다 보니 기존 상인들의 권리금 문제가 불거졌고 임대료도 최근 2년간 15% 넘게 오르기도 했다. 주민 입장에서는 상권이 커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오랫동안 장사하던 분들이 하나둘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동네가 잘된다’는 말이 모두에게 좋은 소식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의서를 들고 골목을 돌기 시작한 건가.
지역상생구역 설정을 위해 먼저 지역상생협의체가 필요했다. 협의체가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협의체 구역 내 상인과 건물 소유주, 토지 소유자 각각 50% 이상 동의를 받아야 했다. 1년 안에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만만치 않았다. 2024년 당시 행궁동에는 약 160개의 점포가 있었고 건물 소유주도 상당수에 달했다. 대상 지역이 넓었던 만큼 구역을 나눠 지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각 구역의 상인과 건물 소유주를 한 명씩 찾아다니며 지역상생협의체의 취지와 필요성을 설명했다.
수원시와 함께 만든 홍보물을 들고 전단도 돌렸고 직접 점포와 주택을 찾아가 지역상생협의체가 왜 필요한지 설명했다. 주변 지인들의 도움도 받았다. 한 사람의 동의를 받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 명 한 명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셨고 결국 필요한 동의율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도 많았겠다.
행궁동에서 잘되는 점포라는 소문을 이용해 부동산업체와 연계하고 점포를 소개하거나 권리금 등을 통해 수익을 얻으려는 사례를 봤다. 동의서를 받으러 다니면서 다양한 상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다 보니 개별 상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존 상인과 신규 입점자가 상생하려면 누군가는 현장을 살피고 조정해야 한다. 행궁동에는 그런 역할을 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지역상생구역 지정을 모두가 반겼던 것은 아니었을 것 같다.
처음부터 모두가 적극적으로 찬성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도입되는 제도인 만큼 실제로 효과가 있겠느냐는 의문도 많았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임대료 인상 폭을 제한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세입자 역시 업종 변경 등 영업 과정에서 일부 제약이 생길 수 있어 신중한 입장이었다. 초기에는 혜택과 효과가 명확하지 않아 의견이 엇갈렸지만 행궁동이 계속 발전하려면 기존 상인과 주민, 건물주가 함께 갈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결국 모두가 공감했다.
지정 이후 골목에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무엇이었나.
사람들의 마음이다. 상권이 급격하게 변하거나 임대료가 오르면 어떡하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주민과 상인이 함께 지역을 관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이 생겼다.
행궁동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다. 지역상생구역이라는 이름을 통해 이곳을 단순히 와서 소비하고 떠나는 공간이 아니라 주민과 상인이 함께 가꿔가는 동네로 바라보는 인식이 생겼다. 손님들 사이에서도 ‘내 소비가 이 골목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상인들이 실제로 체감하려면 매출도 따라와야 하지 않나.
지역상생구역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상인들의 삶이 저절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손님이 찾아오고, 소비가 일어나고, 그것이 매출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실질적인 소비를 이끌어낼 방안이 필요하다. 온누리상품권 사용처를 지역상생구역까지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다면 소비자의 방문을 유도하고 상권 안에서 실제 소비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역상생구역이 상권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와 돈을 쓰고 그 매출이 다시 골목을 살리는 곳이 돼야 한다. 그래야 다른 지역에서도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생길 수 있다.
신규 입점자도 돕고 있다고.
현재 지역상생구역 내 특정 업종이 과도하게 몰리지 않도록 업종별 현황을 관리하고, 신규 입점자가 해당 상권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역상생협의체 사무실을 찾아오면 현재 어떤 업종이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 상권 상황은 어떤지 안내해준다.
부동산업체나 주변의 정보만 믿고 들어왔다가 실제 영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을 줄이자는 것이다. 기존 상인과 신규 입점자가 서로 피해를 보지 않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지역상생구역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살아온 동네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수원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약 35년을 살았다. 특별한 사람이어서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냥 이 동네가 오래 잘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행궁동에는 수원화성이라는 세계문화유산이 있고 관광이라는 분명한 강점도 있다. 문화유산과 관광이 지역 상권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 행궁동만의 경쟁력을 키워가고 싶다. 행궁동이 지역상생구역의 대표적 사례로 남았으면 한다. 아직 행궁동 전체가 지역상생구역으로 지정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모든 구역이 지역상생의 취지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정 범위를 넓히는 데도 계속 힘을 보태고 싶다.
백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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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