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 지금] 드라마 우리의 거울

드라마나 영화는 허구다. 현실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다.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하더라도 ‘허구’가 들어간다.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사극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도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시간은 상상으로 채운다. 역사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과 그들의 삶은 허구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다고 드라마와 영화의 세상이 무조건 ‘가짜’일까?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 가짜는 모두 현실에 있을 법한, 아니면 가까운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어이없다고 여긴 상황이나 사건, 과학적 상상력조차 뛰어넘는 황당한 가상의 미래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우리는 숱하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때론 드라마와 영화의 상상과 허구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아무도 모르게 감춰져 있던 세상을 기가 막히게 정확히 드러내는 일도 있다. 반대로 현실을 가공의 세계처럼 위장해 그 현실을 더 날카롭게 인식시키기도 한다. 드라마와 영화가 아무리 허구라 하더라도 늘 현실이란 발판 위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현실에 있으니까. 아니면 드라마와 영화가 욕망하는 세상이 때론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세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드라마와 영화가 세상을 직접 바꾸지는 못한다. 한낱 허구의 영상이 권력이나 제도가 될 수는 없다. 영상은 우리가 원하는 세상, 미래를 잠깐 비춰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건설하지는 못한다. 생생한 현실조차도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환상이 되기 쉽다. 그래서 현실은 그것들을 통해 드러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은 스크린이나 TV가 아닌 땅 위에 서 있기를 원한다. 그게 진실하니까. 

그러나 드라마와 영화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이입과 카타르시스란 무기가 있다. 당장은 이룰 수 없지만 언젠가는 나도, 이웃도, 내가 사는 세상도 영화처럼 되기를 바라는 소망. 그 소망은 드라마와 영화가 담은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그것을 바꿀 용기를 가지게도 해준다. 드라마와 영화의 힘이다.

50여 년 전, 세계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지금은 노배우가 된 알랭 들롱이 주연한 조세 조반니 감독의 1973년 영화 ‘암흑가의 두 사람’은 프랑스에서 단두대(기요틴)를 몰아냈고, 나아가 사형 제도까지 폐지시켰다. 단두대로 끌려가는 주인공의 공포에 가득 찬 눈빛과 잔인한 사형 집행 장면이 프랑스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마음이 법과 제도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마지막 선고공판이 있던 날의 법정 풍경을 그린 젊은 인턴 기자의 단신.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한 문장짜리 짧은 스케치에서 작가 공지영은 비명 소리를 들었고 가시에 찔린 듯 아파서 <도가니>를 썼다.
 
물론 그 소설 역시 허구다. 아무리 ‘현실이다’, ‘사실이다’라고 소리쳐도, 5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진 끔찍한 특수학교 교장과 교사의 청각장애인 성폭력과 재판을 소재로 삼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허구가 섞인 ‘이야기’일 뿐이었다. 공간을 가상의 도시로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릇만 그렇지 알갱이는 오롯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 사건을 취재했고, 기록을 뒤졌으며, 당사자들을 만나 인터뷰까지 한 논픽션이라고 우겨도 소설은 소설이다. 숙명이다.

그러나 영화가 되면서 달라졌다. 현실을 끄집어내고 세상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현실을 다시, 그것도 더욱 생생한 비극으로 기억해내고, 분노하고, 부끄러워했다. 법정에서 아이들이 증언하는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단 한 줄의 기사로 끝냈던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며 그때 사건을 다시 들춰내 대문짝만 한 기사로 다뤘다. 깜짝 놀란 경찰과 국회, 교육 당국이 사건을 재조사하고 법까지 바꾸겠다고 나섰다. 당시 재판을 맡았던 검사와 판사는 양심선언까지 했다.

영화 ‘도가니’라고 다를 게 없었다. 역시 세상 자체가 아니었다. 허구가 섞인 소설을 그대로 따라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실이 됐고 현실로 이어졌다. 드라마와 영화는 이렇게 착각(환상)을 불러일으킨다. 현실이 허구가 되기도 하고 허구가 현실이 되기도 한다. 상상을 지금, 여기 살아 있는 생생한 현실로 바꿔주기도 한다. 드라마와 영화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감동은 공감(감정이입)에서 나온다. 그 공감이 모여 이따금 세상까지 바꾼다. 드라마와 영화가 단순히 오락적 재미를 뛰어넘어 친근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나의 마음까지 움직이려면 그 주인공이 슈퍼맨이나 배트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같은 초인적 영웅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나’와 같은 평범하고 힘없는 인물이어야 한다.  

지난주 막을 내린 ‘김과장’이 높은 인기와 공감을 얻은 이유도 주인공이 다름 아닌 일개 경리과장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한 능력도 없는 김 과장이 거대 자본 권력인 대기업에 빌붙어 괴물이 되거나, 양심을 팽개치고 돈의 노예가 된 인간들에 맞서 싸웠다. 수많은 위기와 난관이 닥쳤을 때 그를 도운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존재다. 


 드라마_김과장

ⓒKBS 2TV


‘김과장’에서 많은 사람이 통쾌한 대리만족을 느꼈다는 것은 그만큼 분식회계로 불법 비자금을 조성하고, 임금착취와 부당해고를 일삼는 대기업과 그런 기업과 유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권력의 모습이 우리 현실과 너무나 닮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제는 ‘나’라도 나서서 그것을 바로잡고 싶다는 얘기다.  

그러니 비록 드라마에서지만 좌충우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김성룡 과장을 어찌 지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가 영웅이 아닌 나와 비슷한 인간이란 사실이 한편으로는 서글프면서도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나도 그런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환상과 용기를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상상이나 가공이 아닌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는 증거다. 더구나 올곧은 지도자나 권력자가 없거나, 지도자나 권력자가 부패에 빠져 힘없는 한 개인이 양심과 목숨을 걸고 그런 현실을 바꾸는 드라마가 카타르시스를 주며 인기를 누리는 사회는 더 불행하다. 어쩌면 ‘김과장’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거울’인지도 모른다.


이대현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