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희망가’는 묻는다.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먼지와 티끌이 휘날리듯 어지러운 세상, 아니면 먼지와 티끌처럼 허망한 인생.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하고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는 이렇게 일장춘몽인 인생과 세상에 대한 애잔하고 구슬픈 타령이다. 미국 찬송가 ‘우리가 집으로 돌아올 때’, 아니면 일본 진혼곡 ‘새하얀 후지산 기슭’이 원곡이라고 하지만, 편곡자도 작사자도 미상이다. 1923년쯤 유행하기 시작했고, 가수 겸 배우 전영록의 고모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음반 취입 가수 채규엽이 불러 히트시킨,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우리 정서와도 잘 맞아 오랜 ‘구전가요’ 같은 친근한 느낌의 노래다.
1970년대 이문구가 첫 구절 ‘이 풍진세상을’을 졸부의 시대착오적 탐욕을 풍자한 소설의 제목으로 쓰기도 한 ‘희망가’는 역설이다. 삶에 희망을 묻지만, 그것은 환희와 기쁨이 아니라 체념과 허무와 망각이다. 3·1운동의 실패로 조국 독립의 꿈이 좌절된 우리 국민들의 절망과 허탈한 심정의 표현이리라. 어쩌면 그 체념과 비움에서 위안을 찾으려 했는지 모른다.
작사가를 알 길이 없으나, 추측건대 그는 시인 아니면 당대 지식인이었을 것이다. 압축적인 사자성어와 공감각적인 시어들의 느낌이고, 깊고 철학적이다. 그도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삶과 나라 잃은 설움에 좌절하고 허탈했을 것이다. 그래서 희망 잃은 세상에서 부귀영화, 담소화락, 주색잡기도 모두 봄날의 꿈과 같다고 한 것은 아닐까. 힘들고 지친 ‘세상만사를 잊으면 희망이 족할까’라고 자조한 것은 아닐까.

▶ 2016년 6월 JTBC 예능 프로그램 ‘히든싱어’에서 ‘희망가’를 부른 가수 이선희. ⓒJTBC
유행가도 때론 한 시대의 풍미로 끝나지 않고,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린다. 시대에 따라,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 따라 특별한 의미로 다가간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힐링’이 된다. 몇 년 전에는 어느 TV 프로그램에 나온 가수 이선희가 이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쓰다듬어주었다. 노래의 힘이다.
언론사의 한 선배는 “노래도 늙는구나”라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전혀 귀에 들리지 않던 노래, 유치하고 엉터리인 가사도 세월의 이끼가 끼면서 인연과 의미가 되고, 삶의 고비마다 가슴속 깊이 들어와 위안이 되어준다. 삶에서 우러난 노래는 그 속에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담고 세월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 다소 퇴폐적이면 어떻고, 궁상스러우면 어떠랴. 그 노래로 위로받고, 위로해줄 수 있다면.
100세 가까운 늙은 노래 ‘희망가’를 다시 떠올린 것은 아내가 암 투병을 시작한 3년 전이었다. 수술과 항암치료로 만신창이가 된 아내가 벼랑 끝 심정으로 선택한, 충북 청주에 자리 잡은 호스피스 전문 시설 성모꽃마을.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암 환자 치유센터’라고 했지만 정확히 어떤 곳인지 몰랐다. 그런 낯설고 외딴곳에 아내를 내려주고는 발길을 돌리지 못해 한참을 차 안에서 울었다. ‘이렇게 아내를 버리고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과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차를 몰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읊조린 “이 풍진세상을….” 왜 수많은 기억과 노래 중에서 ‘희망가’였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다만 가장 원초적 본능인 ‘생존’ 앞에서 몸부림치는 아내, 그 불안과 고통의 시간을 지켜보고 함께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희망’을 갈구하면서 세상만사가 춘몽 같고 부귀영화가 부질없다는 노랫말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성모꽃마을에서 요양과 신앙으로 건강이 좋아진 아내는 이후에도 그 효과를 믿고 몇 번이고 다시 그곳을 찾아 머물곤 했다. 그때마다 혼자 돌아오는 길에서의 애청곡, 애창곡은 ‘희망가’였다. 마음이 편안했다. 바뀐 상황에 대한 억울함도 우울함도 녹아내렸다. 나훈아의 능숙한 노래는 해탈의 느낌이고, 이선희의 명상적인 노래를 들으면 머리가 맑아졌다. 직접 작은 목소리로 부르면 초로의 삶에 진정한 희망이 무엇인지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희망가’는 허무나 포기, 절망의 노래가 아니다. 부질없는 욕심을 내려놓고 온갖 번뇌를 잊음으로써 오히려 평화와 평안으로 나아가게 한다. 더구나 하루하루 생명의 끈을 붙잡고 있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소중하고 간절한 ‘희망’이 있을까. 삶이 어느 때보다 팍팍한 요즘, ‘희망가’는 희망은 악착같이 집착하고 누림으로써 채울 수도 있지만, 스스로 낮추고 버림으로써 채울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역설의 역설이다.
지난해 연말, 1년 만에 다시 아내와 성모꽃마을을 찾았다. 그곳에서 아직 회복되지 않은 사람들, 회복했지만 언제 병이 다시 찾아올지 몰라 불안해하며 요양하는 사람들, 투병 중인 사람들 그리고 보호자들과 함께 성탄축제를 열었다. 어울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장기 자랑도 펼쳤다.
50~70대가 대부분이고,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숨이 차서 자리에 앉아 쉬어야 하는 몸이었지만 그들은 성탄의 기쁨을 즐기면서, 새해에는 건강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가기를 염원했다. 그 순간만이라도 그들은 ‘불안’을 떨쳐버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일부러 더욱 떠들썩하고 신나 할수록 가슴 한쪽이 텅 비고, 그들의 마음이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계획에도 없던 ‘희망가’를 불렀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 아내 앞에서 처음으로. 이 노래와 아내 그리고 성모꽃마을과의 인연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서. 긴장하고 조명도 어두운 데다 눈까지 감고 부르느라,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모두가 눈물을 훔쳤고, 일어나서 함께 손을 흔들며 합창한 것을.
축제가 끝난 후 그들이 다가와 말했다. “감동적이었다”고, “내 마음과 같았다”고. 암 환자 가족으로서 흔한 경험 한마디였고, 음치 수준을 겨우 벗어난 노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잠시나마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비슷한 시간 위를 걸어온 내가 그랬듯이, 이 노래가 그들에게도 ‘위로(힐링)’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낡고 늙은 유행가도 누구에게는 ‘희망’이다.
이대현 | 국민대학교 언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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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