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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고 맛으로 느끼는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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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군산 원도심의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옆 장미갤러리와 미즈카페 사이 정원이었다. 이쪽저쪽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데 30대 초반쯤 되는 여성이 미소와 함께 카메라를 내밀었다.

장미갤러리는 해방 이후 위락시설로 사용됐던 근대 건축물을 개조해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미즈카페는 1930년대 무역회사였던 건축물을 근대역사박물관 앞에서 이전해 와 개축한 뒤 카페로 꾸몄다. 두 건물 사이에 정원석, 석등 등을 놓고 정원으로 조성해 이곳에 들르는 여행자마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군산세관과 나란히 자리한 구 군산세관, 쌀 창고를 소극장으로 개조한 장미공연장, 군산근대미술관(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등이 장미갤러리 좌우에 인접해있다.

이곳은 도로명주소 시행 이전에는 장미동으로 불렸다. 군산에서의 장미란 쌀을 쌓아놓는다는 의미의 장미(藏米)다. 일제는 군산을 쌀 수탈을 위한 도시로 발전시켰고, 지금도 군산내항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권에는 당시 지어진 관공서, 상가, 일반 가옥 등 170여 채의 근대 건축물(적산가옥)이 남아 있다. 수탈의 실상과 힘겨웠던 하층민들의 삶은 1930년대 채만식의 소설 <탁류>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탁류>의 한 배경이기도 했던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지금의 군산근대건축관은 장미갤러리 옆 블록에 있다. 군산근대건축관 뒤쪽 광장에는 <탁류>의 주인공인 ‘초봉’과 그 아버지 ‘정주사’ 등의 동상이 말없이 탁류의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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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는 수탈의 아픈 역사가 미래 세대를 위한 교훈이 될 수 있도록 군산을 역사교육의 도시로 되살렸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근대역사경관지역’을 선정해 원도심권의 건축물들을 단장했고 특히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인근 ‘근대 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화 사업’을 통해 전시와 공연, 예술과 창작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도보로 근대문화 여행을 즐긴다면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기점으로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전국 최대의 근대문화자원을 전시하는 곳으로 박물관 자체만으로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또 군산이 자랑하는 탁류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군산시는 군산의 여러 역사 유적지와 명소들을 잇는 관광로를 개발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노선이 탁류길이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출발해 구 군산세관, 수덕산공원, 바다조각공원, 신흥동 일본식 가옥, 동국사, 정주사집 문학비, 개복동 예술인의 거리, 군산근대건축관 등을 돌아 다시 군산근대역사박물관까지 총 6킬로미터 거리의 길이다.

탁류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군산 원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중앙로를 기준으로 중앙로 북쪽의 장미동·영화동 일대와 중앙로 남쪽의 신흥동·월명동·금동 일대의 두 블록으로 나눠 도보여행을 즐겨볼 수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등 영화 속 그 모습 그 거리들

중앙로 남쪽으로는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등의 촬영장소로 유명한 신흥동 일본식 가옥에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31930년대 풍의 게스트하우스 고우당, 우리나라에 남은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대웅전, 구 군산부윤(시장) 관사 등은 빼놓지 말자. 사실 군산으로의 시간여행은 1930년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골목골목 우리가 지나온 시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오랫동안 개발소외지역으로 머물다 보니 최근 들어 역설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의 시대극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사진관이다.

영화가 개봉된 것이 1998년. 그렇다면 초원사진관은 대체 얼마나 오래된 곳일까 하는 생각으로 초원사진관 앞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외관이 깔끔하다. 안에 들어서니 사진 촬영 장비들과 <8월의 크리스마스> 관련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다. 청순했던 심은하가 문을 열고 나올 듯하다.

“지금 증명사진 찍을 수 있을까요?” 수십년간 사진을 찍었을 듯해 보이는 연배의 어르신이 카메라 진열장 뒤에 앉아 답했다.

“그 카메라로 찍어줄까요?” 알고 보니 원래 초원사진관은 영화촬영을 위해 지어진 세트였으나 많은 관광객들이 초원사진관을 찾자 군산시가 이를 다시 지어 2012년 말부터 문화관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사로 알았던 분은 군산시청 직원이란다. 살짝 환상이 깨지는 기분도 들긴 했지만 스토리텔링이 별건가. 많은 사람들이 믿고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 이렇게 초원사진관이 만들어진 게 아닌가.

군산의 볼거리는 원도심을 벗어나서도 많다. 새‘ 만금 시티투어’를 이용하면 하룻동안 보다 편하게 군산 여행을 할 수 있다. 군산시외버스터미널과 군산역에서 탑승하며 은파호수공원, 근대역사박물관 일원, 새만금, 고군산도, 채만식문학관, 임피역 등을 잇는 4개 코스를 돈다. 군산시는 지난해부터 ‘군산시간여행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에는 10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이 가을, 근대문화로의 시간여행에 직접 참여하길 원한다면 군산시간여행축제 홈페이지를 두드려 보자.

글과 사진·박경아 기자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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