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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글로벌화 자기 것이 없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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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전통 판소리는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채 대중과 멀어져야 했던 음악 중 하나였다. 현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2011년. 푸른 눈의 거장은 판소리 300년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변화로 국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동독 출신 세계적인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80) 얘기다. 그는 2011년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를 외국인 최초로 연출하며 ‘국악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비유하자면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축구 역사의 기둥이 되어버린 히딩크 감독처럼, 2011년 국악계에는 아힘 프라이어가 있었다고 할까.

그가 한국에 다시 왔다. 3년 만이자 세번째다. 입국하자마자 인터뷰에 응한 프라이어는 공항에서 곧바로 왔다며 “지금 일어나는 시간이니 괜찮다”고 웃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심도 있는 이야기와는 달리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를 감추지 못했다. 아힘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방문할 만큼 한국사랑이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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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내 생강차에 들어 있는 생강을 과자처럼 씹더니 “맵다”면서도 계속 입에 넣었다.

3월 독일 방문한 박 대통령과도 베를린장벽서 만나

아힘 프라이어는 독일 현대연극의 거장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수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인물이다. 1934년 베를린 태생으로 베를린 국립 미대를 졸업한 뒤 베르톨트 브레히트 밑에서 배우다가 직접 오페라 제작에 나서 무려 150편의 오페라와 연극을 연출했다. 2011년 우리나라 판소리 300년 역사상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수궁가>를 연출하며 한국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 인연을 계기로 지난 3월 아힘 프라이어는 독일을 국빈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도 만났다. 아힘은 당시 베를린장벽 전과 후의 두 세상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나는 여러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지 않고 예술만 해 왔다. 예술은 늘 인간의 원형에 살고, 그 원형을 어렵게 발굴하고 밝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위한 관용만이 정치적인 장벽을 무력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이에 박 대통령은 “통일과 통합의 과정에서 예술가들의 큰 역할을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판소리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연출가. 그가 판소리에 매료된 이유를 물었다. 아힘은 “판소리는 단음에서 나는 그 쉰소리와 같은 원초적인 소리가 아주 매력적이다. 세계의 민속음악들이 갖는 특징 중 하나”라며 “판소리가 장터에서 관객들과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은 그때문”이라고 말했다.

<수궁가>는 기존의 판소리와는 다르게 가면을 씌우고 독특한 의상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표현주의적 화풍을 담은 무대 한가운데 거대한 한복 치맛자락이 등장하고 신명나는 판소리가 가득하다. 아힘은 <수궁가>에 대해 “이야기를 곱씹을수록 해학과 지혜가 녹아 있더라. 우화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토끼나 거북이 같은 상징이 지금 우리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작품을 보고 나서도 관객에게 여운이 남게 하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수궁가>는 뮤지컬이 아니라 정통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아힘이 강조한 것은 ‘작품의 원형’. 아힘은 “고전 전통으로 전해 내려오는 정신을 바탕으로 현대에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대의 작품 속에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와의 소통에 중점을 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페라는 시대마다 다른 상황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아힘의 눈은 더 깊어졌다.

작품을 연출할 때 중점을 둔 것은 조화였다. “내가 생각한 무대는 연기자와 관객의 호흡이다. 판소리가 갖는 엄청난 힘이었다. 그런 단절을 가졌던 오페라의 성격을 없애는 것이 큰 과제였고 나는 더 노력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공연한 이후 <수궁가>는 그해 독일 무대에도 올라갔다. 독일 부퍼탈 극장에 올린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Mr.Rabbit and the Dragon King)>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국의 것을 그대로 유럽으로 가져가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처럼 작품에 손을 대지 않았고 서양 악기와 음악은 모두 없앴다. 소리꾼이 움직이는 모습이 좋아 무대도 수묵화로 한국 것을 그대로 표현했다.

“원형에서 창조의 힘 나와… 한국 예술가들, 전통문화에 관심을”

아힘 프라이어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건 그림이다. 본업이 화가였던 그는 50년 이상 그림을 모으고 그려왔다. 무명 작가들의 그림도 모은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라는 대답을 남겼다. 2천여 점의 그림이 벽에 걸린 집은 자그마치 6층에 달한다. 그는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연출에 대한 영감을 받는다. 연출은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내 머릿속의 이미지를 그림을 통해 먼저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힘의 예술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머리를 통해 그려지는 환상들이 실제 사물이 돼 관객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누구의 것도 모방하지 않는 예술, ‘창조’. 예술에 대해서 아힘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예술인들이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을 더 두었으면 좋겠다. 현대화와 글로벌화는 자기 것이 없으면 안 된다. 그 원형에서 모든 창조의 힘이 나온다.”

글·박지현 기자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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