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노국자(68·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씨가 우리 ‘애들’이라며 건넨 사진엔 까만 피부에 빨간 옷을 걸친 소년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난해 2월,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 속 어린이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그의 얼굴엔 따스한 미소가 가득했다.
먹고사는 데만 신경 쓰는 평범한 주부였던 그가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5년, 우연히 TV에서 아프리카 기아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였다. 참혹한 실상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곧바로 자동응답전화 ARS 기부를 하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 이를 계기로 아프리카 아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들을 위해 우물을 파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TV에서 열 살짜리 꼬마가 학교를 가고 싶다며 우는 거예요. 마을에 우물이 없어 자기 몸통보다 큰 물통을 머리에 인 채 물을 길으러 하루 네다섯 번씩 6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왕복하느라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거죠. 그 아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며 우물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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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마실 수 없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면서 1960~85년까지 초등학교 교사로 강원도 삼척에서 가르쳤던 탄광촌 아이들이 떠올랐다. 물을 뜨러 다니느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탄광촌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된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우물 하나를 파는 데는 5백만~1천만원 정도가 들었다. 전업주부인 그가 감당하기엔 큰 금액이었다. 노 씨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생전 하지 않던 폐지 줍기를 하고, 화장품 전화판매를 했다. 신문지 1킬로그램을 모아도 받을 수 있는 돈은 2천4백원에 불과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우물을 파서 아프리카 아이들의 하얀 웃음을 되찾아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는 기뻤다.
노 씨의 아프리카 사랑에 주변 사람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독지가 할머니, 인근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아프리카를 위해 써달라며 그에게 기부했다. 이런 기부금들이 모여 2005년부터 지금까지 에티오피아 2개, 우간다 3개, 케냐 1개, 짐바브웨 1개 총 7개의 우물을 만들었다.
지난 4년 동안 기부로 가장 많은 행복을 누린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강조하는 노 씨는 우간다 쿠미 마을에 사는 아촘(여·12)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제는 물 뜨러 가지 않아도 돼 고맙다며 언제 배웠는지 모를 한국어로 삐뚤빼뚤하게 편지를 썼더라고요. 가진 것을 나눌수록 행복해지는 행복 바이러스, 기부문화가 앞으로 더 많이 확산되면 좋겠어요.”
글·김은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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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