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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 간판·유학 포기 후 창업 김재연 정육각 대표

카이스트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을 앞둔 한 청년이 돌연 창업을 선언했다. 그것도 온라인 돼지고기 판매다. 창업의 성패를 논하기 전 시작부터 주위의 편견을 이겨내야 했던 김재연(26) 정육각 대표는 “고정관념을 깨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육각’이 창업의 길을 열고 온라인 정육점의 새로운 틀을 정립해가는 과정을 들여다보자.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이러다 말겠지’ 코웃음 쳐 넘기고는 했다. 카이스트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학을 앞둔 김재연 씨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스팩 소유자로, 탄탄대로가 눈앞에 놓여 있었다. “전혀 후회 없어요. 지금을 즐기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과감히 새로운 길을 열기로 했다. 수재로 불리던 예비 연구원은 정육점 사장님이 되었다.

맛의 골든타임을 잡은 신선 돼지고기

김재연 대표가 운영하는 ‘정육각’은 온라인 정육점이다. ‘인터넷으로 고기를 산다?’ 아무리 인터넷 구매가 활발한 세상이어도 선뜻 돼지고기를 사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변질이 우려돼서다. 하지만 정육각은 이러한 마음의 벽만 허문다면 재구매가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한 번도 안 먹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밖에 안 먹은 사람은 없다’라고나 할까.

정육각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평소 돼지고기를 좋아하던 김재연 대표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돼지고기가 고향에서 먹던 것보다 맛없게 느껴졌다. 이유를 찾던 중 석 달이나 지난 돼지의 도축 날짜를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축장을 방문해 갓 잡은 돼지고기 맛을 확인했다. 그제야 원하던 예전 맛을 찾았다. 돼지고기에도 ‘맛의 골든타임’이 있었던 것이다.

신선도가 맛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생각은 창업 구상으로 이어졌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돼지고기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쏟아부으며 암퇘지인지 수퇘지인지, 냉장인지 냉동인지, 도축장은 어딘지 날짜별로 구분하며 고기를 먹었다. 그렇게 6개월간 먹은 양이 무려 500kg. 역시 맛의 포인트는 신선도에 있었다.

수많은 시식을 한 끝에 김 대표는 도축한 지 5일 내에 먹는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가공, 유통 등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소비자가 접하는 시간은 보통 20일 전후가 됐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신선한 고기가 맛있다는 걸 다 알아요. 다만 비용 증가로 이어져 외면하는 거죠” 맛과 비용의 갈림길, 가야 할 방향은 분명했다.

정육각은 도축 3일 내외의 고기만을 판매한다. ‘신선식품의 격을 높이자’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항상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간혹 소고기 판매에 대한 문의가 있는데 숙성이 필요한 소고기는 우리의 지향점과 차이가 있어 취급하지 않습니다”라며 원칙을 강조했다. 이러한 진심은 금세 통했다. “다른 고기는 먹기 힘든데 정육각 고기는 냄새가 안 나서 좋더라고요”라고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임신부의 후기가 곧 입소문을 타고 구매로 이어졌다. 실제 정육각 누리집(www.jeongyookgak.com) ‘후기’는 맛에 대한 칭찬일색이다.

정육각은 개업한 지 한 달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사업이 안정화 궤도에 들어섰지만 맛에 대한 고민은 그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맛의 품질은 ‘돼지’에 있었다. 김재연 대표는 “지금까지도 도축장, 육가공장에 신경을 썼지만 이제 돼지 자체에 더 신경 쓸 계획입니다. 사료, 종자, 사양관리 등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있는 돼지를 판매할 겁니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유통단계 변화에 이어 돼지의 관리로 고기 품질을 높이는 것이다.

 

정육각의 김재연 대표와 직원들

▶정육각은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삼겹살’과 ‘목살’ 두 부위만 판매하고 있다. 왼쪽은 김재연 대표와 직원들 ⓒ정육각

닭과 달걀로 사업 확대할 것

결제 시스템에도 변화를 줄 계획이다. 잠시 시중 정육점을 떠올려보자. 삼겹살 1만 원어치를 주문할 경우 9500원, 1만 800원 등 꼭 1만 원에 맞는 경우가 없다. 무게를 세밀하게 맞출 수 없어서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판매자가 제시하는 가격만큼 고기를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온라인 판매에는 이 과정이 없다. 결국 판매자는 오차를 감안해 가격을 매기기 때문에 자칫 온라인 가격이 더 비싼 경우도 생긴다. ‘정육각’은 이 과정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우선 주문받은 돼지고기의 양을 잰 후, 소비자에게 가격을 검토받아 결제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주문 따로, 결제 따로’라고 할 수 있다. 번거로울 수 있지만 소비자에게 최대한 합리적인 가격의 상품을 제공하려는 시도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 김재연 대표. 불모지라고 생각했던 영역에 과감히 발을 들이고, 그동안 갖고 있던 상식과 편견에 정면승부를 이어간다. “인터넷으로 신선한 고기를 판다고 하니 축산업 종사자 열에 아홉은 가능성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틈새를 찾아 가능성을 발견하고 소비자 만족도 높아지는 걸 보면 그 즐거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요.”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처음 돼지고기를 선택했을 때부터, 온라인 한계를 극복하며 시장을 만들어가고 관련 시스템을 정비하는 과정까지 정육각의 발자취가 길이 되고 있다. “축산업은 오랫동안 변화가 없었어요. 그래서 발전할 부분이 더 많죠”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차후 닭과 달걀로 분야를 확대하고 일일 배송 서비스도 도입할 예정이다.

한 청년의 호기심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국산 돼지고기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에게 씌워진 굴레를 깨지 못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고정관념을 깨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시도해보지 않았어도 우리가 시작해 시장을 끌고 오면 된다고 생각해요.”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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